외국영화 제목으로 등장했던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Wag the dog)」는 말이 최근 우리 주변에서도 자주 쓰인다. 실체가 아닌 허상이, 전체가 아닌 부분이, 본질이 아닌 피상이 마치 전부인 듯이 왜곡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말로 바꾸면 「주객이 전도되고」「본말이 뒤바뀐」 셈이다.정부가 재벌개혁의 역점 과제로 추진해온 이른바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이 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 이런 표현이 딱 들어맞지 않나 생각이 든다. 재벌개혁을 이끌어낼 유효한 수단중 하나가 빅딜임은 분명하지만, 정부가 그 의미를 너무 강조하고 거기에 매달려 온 힘을 쏟아 붓는 바람에 어느새 빅딜이 재벌개혁의 알파이자 오메가인양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빅딜은 왜 시작됐나. IMF체제를 부른 화근중 하나는 재벌의 방만한 문어발식 경영과 빚더미 경영·과잉투자였다. 특히 자동차·반도체·철강·유화·조선 등 좀 된다 하는 업종에는 5대 재벌이 너나없이 뛰어들어 설비과잉과 과당경쟁이 심각한 상태였다. 빅딜은 이들 업종에서 업체간 사업교환을 통해 1, 2개 업체에게 사업을 몰아줌으로써 설비과잉을 해소하고 업종전문화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자는 취지이다.
그러나 빅딜은 태생부터 문제점 투성이였다. 치명적 결함은 반(反)시장적이라는 점이다. 개인의 재산권을 놓고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문제는, 내막이야 어떻든 간에 전경련에 의한 자율결정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니 논외라고 치자. 하지만 한 두 업체에게 사업을 집중함으로써 제도적으로 독과점을 보장하게 되는 결과는 재벌의 시장지배를 정부가 장려하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빅딜의 성사를 위해 재벌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세제 금융상 특혜를 주게 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IMF체제를 불러 나라를 도탄에 빠지게 한 책임이 있는 재벌을 살리는 부담을 또 다시 국민에게 지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빅딜이 말 그대로 국가경제를 위한 「큰 거래」가 된다면 어떤 희생도 참아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재계의 1차 구조조정 결과는 이러한 기대와 너무 거리가 멀다. 대부분 업종이 지분을 공유하는 정도의 어정쩡한 공동경영 방식으로 결정됐고, 그나마 반도체와 발전설비 부문은 경영주체마저 선정하지 못했다. 이러니 앞으로 구체적인 통합작업에 들어가 새 회사가 탄생하기까지는 또 얼마나 백년하청일까? 지금처럼 업체간 이해가 첨예하게 맞서면 통합과정에서도 사사건건 다툼만 벌이다 도중에 백지화할 위험은 없을까. 재벌들도 이런 식의 시간 끌기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것은 「빅딜(Big deal)」이 아니라 「빅쇼(Big show)」일 뿐이다.
애초부터 정부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재벌개혁은 재벌의 업종을 바꾸고 덩치를 줄이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부의 전근대적 경영체제를 글로벌 시대에 맞게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개혁하는 게 더 시급했다. 계열사간 부당 내부거래를 막고, 오너가 그룹 전체를 좌우하는 지배구조를 개선하며, 상호지급보증으로 얽힌 공생공사(共生共死)의 구조를 타파하는 일 등이다. 하지만 그동안 빅딜논의에 묻혀 이 분야에서는 뚜렷한 성과나 진전이 없었다.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문제는 형식적으로 사외이사 몇 명 정도를 선임하는데 그쳤고 부당 내부거래는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부채비율을 200%로 끌어내리는 시한은 내년말로 다가오는데 어떻게 실현시킬지 불분명한 상태다.
재벌개혁은 이제부터라도 정상궤도를 되찾아야 한다. 정부는 빅딜에만 지나친 집착을 보이지 말고 전방위적이고 체계적으로 재벌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재벌개혁은 그렇게 해도 달성하기 어려운 난제중의 난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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