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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머신’ 폭풍우 치다(문민정부 5년: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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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머신’ 폭풍우 치다(문민정부 5년:60)

입력
1998.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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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삼탁씨 “결백”불구 출두다음날 영장/‘가든구입자금’ 계좌추적서 꼬리… 엄씨 “뇌물아니다”/정덕진씨 “형제불구속” 당근에 치안감 등 줄줄이 불어/YS 대노 “아무도 못믿겠다” 엄 병무청장 전격 해임『당신 말이야, LA에 호화저택이 있지. 91년에 260만달러를 주고 구입했더군. 이건 또 뭐야. 라스베이거스에서 1년에 100만∼200만달러를 잃고 한국에서 돈을 가져나갔군. 이 정도면 최소한 10년은 감옥에서 썩어야 할 거요』

눈에 독기를 품은 홍준표(洪準杓) 검사가 정덕진(鄭德珍)씨 앞에 두툼한 서류봉투를 던졌다. 정씨가 움찔했다. 서류봉투에는 미국 수사기관에서 팩시밀리로 전송한 정씨의 카지노 대출금 내역과 부동산 구입내역서등이 잔뜩 담겨있었다. 「VIP CODE(최우량 고객)」가 찍힌 내역서는 정씨의 해외도박 사실을 고스란히 증명해 주고 있었다. 검찰은 정씨를 옭아넣기위해 미국측에 「정덕진이 한국에서 자금을 밀반출했는데 마약자금일 가능성이 있다」며 자금추적을 의뢰했다. 마약이라면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미 수사기관의 생리를 이용한 것. 예상대로 미국측에서 즉시 회답이 왔다.

정씨는 가슴을 파고드는 한기(寒氣)를 느꼈다. 「이번엔 정말 죽는구나…」. 그러면서도 정씨는 산전수전 다 겪은 역전 노장답게 바위처럼 버텼다.

오히려 수사팀의 가슴이 숯검정처럼 바싹 바싹 타들어갔다. 정씨가 구속된 직후부터 배후세력에 관한 대문짝만한 기사가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했고 대검에서는 서울지검의 「과잉홍보」에 대한 질책이 쏟아졌다. 송종의(宋宗義) 서울지검장은 궁여지책으로 특수 1·2·3부 검사 15명 전원을 슬롯머신업소 지분 조사에 투입했다.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지만 정씨의 입만 바라보고 있을 뿐 뾰족한 수단이 있을리 없었다.

며칠간 살을 비비면 원수도 친구가 되는 법. 기(氣)싸움을 벌이던 정씨와 홍검사도 점점 정이 들기 시작했다. 무인도에 표류하는 심정이기는 마찬가지인 두사람이 서로에게 의존하기 시작한 것이다. 『홍검사, 가건물에서 병고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유명을 달리했을 때 가마니 거적 하나로 아버지를 묻어야 했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소』(정덕진)

『나도 어렸을때 동사무소에서 배급해주는 강냉이죽 타러 여동생과 눈보라치던 겨울날 큰 고개마루를 오르내렸어요.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 얼마들고 올라온지 아세요. 단돈 1만4,000원입니다. 하숙비로 1만2,000원을 내니 달랑 2,000원이 남더군요』(홍준표)

「동병상련」이었을까. 정씨의 닫힌 문이 조금씩 열려갔다. 홍검사는 정씨가 자신과도 바꿀수 없을 정도로 사랑한다는 네 딸의 특별면회도 허용했고 나머지 형제들을 불구속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일종의 「당근」이었다. 정씨는 천기호(千基鎬) 치안감부터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것도 동업자인 박모씨가 뇌물을 준 것을 얘기한 것으로 자신과 직접 관련은 없었다.

유창종(柳昌宗·현 의정부지청장) 강력부장의 회고. 『정씨는 고비마다 수사팀의 능력을 시험했는데 천치안감 건이 최초였죠. 동업자 건을 적당히 흘려 수사팀의 의지와 수사여부를 지켜본 것으로 이해합니다』

한편 이보다 40일여전인 93년 3월27일 아침. 서울지검 특수1부 김진태(金鎭太) 검사는 조간신문에 난 차관급 공직자 재산공개내역표를 유심히 살피다 엄삼탁(嚴三鐸·현 국민회의 부총재) 병무청장의 이름에서 시선이 멈췄다. 재산총액 16억2,000만원… 90년 8월 안기부 기조실장 재직시 서초동 갈비집 「동경가든」대지와 건물을 13억5,000만원에 구입. 「공직자가 이렇게 큰 돈이 한꺼번에 어디서 났을까… 이거 틀림 없을 것 같은데」

김검사는 79년부터 3년간 한국은행 근무경력이 있는 검찰내에 알아주는 경제수사통. 본능적으로 이상하다는 감(感)이 왔다. 김검사는 즉시 부산에 살고있는 동경가든의 전 소유주를 찾아내 자금추적에 들어갔다. 상부엔 극비였다.

매입자금의 일부는 중소기업은행 삼전동지점에서 나온 수표였다. 조금 더 내사해 보니 이 지점은 정덕진·덕일 형제가 운영하는 뉴스타 호텔에서 불과 1㎞ 떨어진 곳에 있었고 이들이 단골고객이었다. 한 달여간의 집요한 추적끝에 김검사는 덕일씨 것으로 추정되는 가명계좌에 90년초 1천만원짜리 수표 15장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 무렵은 덕진씨가 검찰에 구속된 직후였다. 홍검사는 국세청에서 입수한 정씨 형제의 346개의 가명계좌를 손에 쥐고 있었다. 정씨는 수사초기 『90년 특별세무조사당시 안기부기조실장이었던 엄장군만 믿고 있었다』고 진술, 엄씨는 수사선상에 1순위로 올라있었다. 하지만 정씨는 돈관계에 대해서 일체 침묵으로 일관, 홍검사의 애를 태우고 있었다. 김검사가 요청한 계좌를 홍검사가 확인해 보니 정씨 형제의 가명계좌가 틀림없었다.

쾌재를 부른 홍검사가 정씨를 다그쳤다. 『모든 것이 끝났어요. 이제 털어놓아요』

체념한듯 정씨는 순순히 시인했다. 『89년 9월 전주건달 문모와 이모등이 「엄장군이 좋지 않게 생각한다」고 귀띔해줘 엄장군을 만났어요. 엄장군이 원하던 전국슬롯머신 현황파악에 협조해 주겠다고 약속했지요. 안심이 안돼 얼마 후 잘보이기 위해 호텔에서 2,000만원, 안기부 안가에서 3,000만원을 주었어요. 그후 국세청의 세무조사 사실을 알고 찾아갔더니 「당신이 야당에 정치자금을 주었다는 정보가 있어 조사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틀 뒤 준비한 1억5,000만원으로 성의를 표시하고 무마를 부탁했어요』

이제는 소환만 남았다. 그러나 엄청장을 누가 맞을 것인지를 놓고 두 부서간 신경전이 벌어졌다. 이미 수사대상에 올라있던 박철언(朴哲彦) 의원은 부담이 커선지 맡기를 꺼려했고 확실한 물증이 있는 엄씨를 서로 맡으려 했다. 송종의(宋宗義) 검사장이 명쾌한 논리로 교통정리를 했다. 『박의원을 「사정담당」저격부대인 특수부에서 맡으면 자칫 보복사정시비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 엄청장은 YS 당선의 1등공신이니 잡아넣어도 잡음이 없을 것 아닌가. 원칙에선 벗어나지만 박의원은 강력부, 엄청장은 특수부에서 맡는 것이 지금상황에선 정답이다』

송검사장의 회고. 『엄씨는 특수부와 강력부가 쌍굴을 파고 있었는데 운이 좋아서인지 양쪽에서 뚫은 굴이 만나 구멍이 뚫린 겁니다. 이때까지도 상부엔 전혀 보고가 안됐지요. 엄씨는 옴짝 달싹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청와대와 대검에 급보가 올라갔고 즉시 엄청장에게 소환령이 떨어졌다. 엄청장은 청와대에 『무엇때문에 그러는지 몰라도 나는 결백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92년 대선때 혁혁한 공로를 세운 인물. 「YS정권에서 안기부장과 국방장관은 떼논 당상이고 병무청장은 경력관리용」이라고 소문날 정도로 실세였다.

김영수(金榮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의 기억. 『엄씨는 문민정권 출범에 기여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나도 안기부에 같이 근무해 아는 사이이기도 했고 … 여러 사람들이 걱정하고 수사를 말리려고도 했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검찰이 하겠다는데… 누굴 봐줄 분위기도 아니었고요. YS에게 보고했더니 「할 수 없지」하는 말 뿐이었어요』

『결백하면 직접 해명하라』는 청와대 지시를 받은 엄청장은 5월18일 거구를 이끌고 검찰에 출두했다. 출두전 엄청장은 권영해(權寧海) 국방장관과 만나 다시 결백을 주장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비상이 걸린 쪽은 오히려 검찰이었다. 청와대에서 현역 병무청장의 사표를 받지 않고 현직신분인 채로 검찰에 출두시킨 것.

검찰 관계자의 증언.『당시만 해도 현역 병무청장을 구속시킨 전례가 없었어요. 더구나 엄청장은 검찰의 독자적 작품이자 최초의 대어급 수확물이었지요. 그런데 현직 신분으로 출두하니 엄청장은 아직「버린 카드」가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더라구요. 「현역」이란게 참 바위덩어리 같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엄청장은 예상대로 완강히 저항했다. 검찰관계자의 회고. 『엄씨는 정씨 형제를 알고는 있지만 뇌물을 받은 적은 없다고 했어요. 간간히 「병무청장을 이렇게 함부로 다뤄도 되느냐. 이제 그만하자」고 항의해 담당검사가 애를 먹었지요. 대검에서는 계속 「어떻게 됐느냐」,「자백 하느냐」며 전화통에 불이 났고… 위에서도 초조했겠지요』

엄청장은 김검사가 계좌추적 결과를 들이대자 다음날 새벽녘에야 조금씩 물러섰다. 검찰 관계자의 이어지는 회고. 『돈은 맞지만 명목은 다르다며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반자백」이었어요. 하지만 물증이 있는 우리로선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죠』

검찰의 수사결과 보고서는 즉시 청와대로 올라갔고 YS는 몹시 화를 냈다고 측근들은 전한다. 김기수(金基洙) 전 청와대 수행실장의 기억. 『그양반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결백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검찰에) 가면 나오고… 어떤 이는 장로인 대통령앞에서 하느님앞에 맹세하고 결백하다고까지 했어요. 나중엔 대통령이 비리에 관한한 아무도 못믿게 됐어요』

엄청장은 다음날 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즉시 해임됐다. 슬롯머신 사건이 한 고비를 넘기는 순간이었다.<이태희 기자>

◎“군부대 위문에 돈줘”/정덕진,엄삼탁 변호 탄원서/당시 법정서 치열한 공방/엄씨 “표적수사” 최근 밝혀

슬롯머신 사건은 수사 못지않게 재판도 험난한 과정을 거친다. 당사자들이 검찰의 수사결과에 한결같이 승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년전의 사건이지만 당사자들은 「그때 그사건」을 지금도 「표적수사」의 전형이었고 재판도 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말한다. 엄삼탁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최근 만난 엄씨는 『이제는 다 잊고 싶은 과거』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 사건은 전형적인 표적수사 였어요. 안기부와 검찰, 경찰 수뇌부를 한 명씩만 쳤지요. 안기부에선 내가 선택된 것이지요』

엄씨의 법정공방은 편지 한통이 계기가 됐다. 94년 1월27일 서울형사지법 항소6부에 탄원서가 올라왔다. 발신자는 서울구치소 수감번호 「4169」 정덕진.

「존경하는 재판장님, 실향민 출신인 저는 엄씨가 군에서 예편해 안기부 기조실장에 취임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가 1억5,000만원을 군에 남아있는 후배들에게 격려나 해주라며 한사코 거절하는 엄씨의 책상에 던져 놓고 왔습니다. 후에 그는 전화로 돈을 전방 장병위문행사에 썼다고 통보해 주었습니다.제가 협박당했다면 몇십배의 돈을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어느날 검사가 불러 신문이 시작됐는데 그당시의 무서운 분위기에서 진실을 말하기란 어려웠습니다」

뜻밖의 탄원서였다. 엄씨를 「협박범」으로 몰았던 검찰에서의 진술과 정반대 내용. 엄씨는 1심에서 공소사실을 시인,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정씨의 탄원서가 전해진 항소심에서 엄씨는 힘을 얻은 듯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였다. 그러나 결과는 항소심에서도 유죄. 엄씨는『정씨에게 탄원서를 요청한 사실이 없다』며 수감중이던 정씨가 인편을 통해 보내온 편지 2통을 공개했다. 편지내용 중 일부. 「저같은 사람을 알았던 죄로 고초를 겪고 계시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집니다. 박철언씨 재판도중 판사가 엄회장님에 대해 묻길래 순수한 마음으로 군부대 위문과 불우이웃돕기에 썼다고 증언했으니 재판때 인용하세요」

검찰 관계자의 기억. 『항소심에서 정씨가 갑자기 군부대 위문 이야기를 하고 엄씨도 장단을 맞춰 애를 먹었어요. 그러나 검찰 조사와 1심증언들을 뒤엎을 수는 없었죠. 재판부도 불쾌하게 생각했는지 엄씨에게 실형을 내리더군요』

엄씨는 자신이 슬롯머신 사건과 연루된 것을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라고 설명했다. 『동경가든을 매입할 때 은행빚을 안고 들어갔는데 은행에서 저축을 해달라고 한 모양이에요. 운전기사가 저도 몰래 은행에 잠시 집어넣었다가 군위문 갈 때 다시 찾은 모양인데 일이 꼬인 거지요』

엄씨의 주변사람들은 그를 군인보다는 무술인이나 스포츠맨으로 기억한다. 젊어서 씨름으로 탄 황소가 100마리가 넘는다는 말이 전해지고 유도와 태권도 합기도등 공인단수만 10단. 국군체육부대장, 대한체육회 이사, 씨름협회장 등을 지내 주변에 아는 스포츠맨이 많다. 40년 경북 달성출신으로 대구 능인고와 경북사대 사회학과를 나온 엄씨는 ROTC 3기로 65년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이 9공수여단장시절 인사참모를 맡았던 「9·9」인맥의 핵심으로 동기생중 선두로 별을 달았고 90년 소장으로 예편한 뒤 안기부 기조실장으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14대 대선땐 YS진영에 가담해 공을 세웠다. YS가 노대통령과 담판을 할 때 사용했다는 「노란봉투」의 제공자로 알려져 있으나 엄씨는 이를 부인했다. 엄씨의 회고. 『도움을 주긴 주었지요. 행동으로 했다기 보다는 안기부 내부단속을 했어요. 직원들이 정권말에 천방지축으로 움직이지 말고 정부가 지향하는 쪽에 설 수 있도록 말이죠. 지금은 YS에게 배신감을 느끼진 않습니다. 그땐 그 분도 통치차원에서 한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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