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묘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왔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시체를 일정기간 가매장했다가 유골을 다시 매장하는 이중장제의 특수한 풍속이 있었다. 삼국시대에는 거대한 봉분을 구축하고 내부에 많은 부장품을 소장하는 등 화려함이 특징이며, 백제에서는 가족묘 성격을 지닌 벽관묘와 화장묘가 존재했다.통일신라시대로 접어들면서 고분들은 교외로 분산되기 시작했으며 묘지선정에 풍수지리가 도입되고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법이 유행했는데 화장후에는 산골(散骨) 또는 매골(埋骨) 처리했다.
고려시대는 화장후 합골, 불사에 안치했다가 매골하는 것이 일반화해 화장·매장 풍습이 혼재했다. 조선시대에는 화장을 금하고 매장제를 강력히 시행했으며 일제시대에는 국토이용의 효율화, 미신타파 등을 명목으로 공동묘지제를 실시하기도 했다. 불과 20여년전 까지는 남부 섬지방에 풍장 풍속이 남아있었다. 그리 흔하지는 않았지만 주검을 풀로 덮어놓았다가 뼈만 남았을때 매장하는 초장과 주검을 호랑이 밥으로 주는 호식장도 우리나라에 엄연히 존재하던 장묘방식이다.<남대희 기자>남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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