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위급 회담이어 체육·과학교류 등 봇물/일부 ‘하나의 中’ 수용전제/평화협의 주장 눈길/통일방안 등 이견은 여전중국과 대만 사이에 화해의 기운이 솔솔 무르익고 있다. 14일부터 중국을 방문한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海基會) 쿠천푸(辜振甫·81) 회장과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海協會) 왕다오한(汪道涵·83) 회장은 15일 상하이(上海)에서 양안(兩岸)간 최고급 회담2차 회의를 갖고 정치적 대화를 포함한 모든 문제를 논의할 양측 협상단간 접촉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또 중국측의 王회장은 내년에 중국 대표단을 이끌고 대만을 방문, 양측간의 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
■양안 회담
93년 4월 싱가포르 1차 회담 이후 95년 6월 리덩후이(李登輝) 대만 총통의 방미로 중단됐다. 5년만에 재개된 이번 회담은 중국 본토에서 열리는 최초의 최고위급 회담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중국은 통일문제 등 정치협상관련 협의를 바라는 반면, 대만은 어업분쟁 등 실질적인 문제부터 논의하거나 자유로운 의견 교환을 통해 우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18일 장쩌민(江澤民) 중국주석 등의 대만 대표단 면담에서 양국 정상회담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이나 성사여부는 불투명하다.
■체육교류협정
중국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자 중국 국무원 국가체육총국 국장인 우샤오쭈(伍紹祖) 일행은 16일 대만과 체육교류협정 체결 협의를 위해 방문한다. 또 대만선수들의 중국 현지훈련 프로그램을 상의하고 22일 열리는 양안 체육관계 세미나에도 참석한다.
■양안간 쟁점
양측은 대만의 기본 지위와 통일방안 및 절차 등에 아직도 현격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다. 다만 최근 중국측이 대만문제 해결을 위해 대만의 군대보유를 허용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으나 「1국2체제」는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 李총통은 통일논의 등 정치협상에 앞서 정치 및 사회체제를 과감히 개혁할 것을 우선 요구하고 있다.
■전망
해빙 무드에도 불구하고 양안 간에 통일 등 획기적인 관계증진은 당장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최근 대만 일각에서 중국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하나의 중국」원칙 수용을 전제로 한 양안간 평화협의를 제의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국가 주권을 평등하게 공유하고 무력사용 및 외교경쟁을 포기하며 양안협의기구를 설치해 현안을 논의하자는 방안이다. 중국은 2000년 총통 선거를 앞두고 야당을 중심으로 대만독립 움직임이 거세질 것에 대비, 李총통 등「대만 1세대」와의 관계증진에 주력하면서 정치공세를 한층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김혁 기자>김혁>
◎양안관계 주요일지
·87.11 대만, 중국대륙 친척방문 허용
·91. 2 대만·중국, 정치협상 위해 해기회·해협회 설립
·91. 5 대만, 무력통일방침 폐지
·92. 1 중국, 중국인 대만왕래 허용
·93. 4 제1차 해협회해기회회담 싱가포르서 개최
·95. 6 리덩후이 총통 미국방문, 중국 제2차 해협회해기회 회담 무기한 연기
·95.7∼96.8 중국, 대만겨냥 세차례 대규모 미사일 훈련
·97. 9 장쩌민, 정치성 대화재개 용의 천명
·98.10 제2차 해협회해기회 회담 개최
◎대만외교의 오늘/‘골리앗’ 중국에 맞서 달러앞세운 ‘銀彈외교’
「골리앗」 중국에 맞서 독자적 위상을 유지하기 위한 대만의 외교는 전통적으로 자본력을 내세운 「은탄(銀彈·달러)외교」였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 1만 3,000달러, 97년 현재 외환보유고 800억달러, 수출입 총액 2,335억달러의 알짜배기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만은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기반을 무너뜨리려는 중국의 노력을 봉쇄해 왔다.
특히 중국이 제3세계의 종주국을 자처하며 이 지역에 대한 수교확대에 주력하자 대만은 중남미 등 제3세계 유엔회원국을 상대로 막대한 사회간접자본을 지원하는 대항 외교에 힘을 기울였다.
대만 경제는 90년대 들어 본격화한 대만기업의 중국 투자확대를 고리로 양안관계개선에도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91년부터 97년 9월까지 중국에 대한 대만기업의 투자 총액은 108억달러, 97년 대중국 수출신장률은 전년대비 8.1% 증가했다. 리덩후이(李登輝)총통은 이처럼 대만기업의 중국 의존도가 급속히 심화하자 97년 10월 중국투자에 대해 강력한 규제조치를 시행했지만 대세를 거스르지는 못했다.
국제사회에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국의 위상이 급속히 신장하면서 대만의 「은탄외교」도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97년과 올해 미·중 교환 정상회담을 통해 대만독립과 두개의 중국정책(一中一臺) 등 대만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신삼불(新三不)」정책 표명 등은 이같은 대세를 반영하는 것이다.
98년 1월 남아공과 중국의 수교 역시 국제사회에서 대만 외교력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이다. 아시아 경제위기의 심화에 따른 대만 경제의 불안 역시 양안관계에 새로운 변수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장인철 기자>장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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