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집에 3일간이나 수돗물이 나오지 않았다. 단수 예고 소식을 들었을 때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버티나』 걱정이 앞섰다. 식수는 어떻게 해결한다하더라도, 가정에서 물 쓸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 저것을 생각하며 최대한 물을 비축했다. 하지만 막상 단수가 되자 생각보다 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하, 그동안 너무 물을 낭비했구나』 다만, 수세식 화장실이 문제였다. 상대적으로 많은 물이 요구됐다. 문득 일본이 떠올랐다.90년대초 일본에서 지낼 때다. 조그만 아파트에 살았는데, 화장실 물 내리는 것이 두 종류였다. 대(大) 소(小)로 나뉘어 있었다. 「큰 것」을 봤을 때는 대쪽으로, 「작은 것」인 경우는 소쪽으로 레버를 돌리면 됐다. 당시에는 『별 것을 다 가지고…』라는 느낌이었으나, 지금 돌아보면 머리가 끄덕여진다. 물 뿐만 아닐 것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살아가는데 필요이상으로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또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났다.
추석이 지났다. 국제통화기금(IMF) 시대 처음 맞는 큰 명절이었다. 보름달은 예년과 다름없었지만, 그 달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결코 예전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추석은 추석인 법. 아무리 어렵다지만 먹거리는 그런대로 풍성했다. 상당히 많은 양이 그냥 버려지기도 했다.
넉넉하게 차리는 것이 우리의 인심이지만, 한쪽에서는 잠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 고생하는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한 선배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까지 세금 꼬박꼬박 내고, 크게 법을 위반하지도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이처럼 고통을 당해야 할까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으나 그것은 잘못이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불행한 이웃과 나누지 않았거든. 그것에 대한 일종의 벌이야』
이번 추석은 어려웠지만, 우리에게 이 시대에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해 주었다는 점에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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