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성리학의 요람이던 64곳 서원을 꼼꼼히 소개/선비의 정신세계 생생히 담아「(봄에는) 산새가 즐거이 서로 울고, (여름에는) 초목이 우거져 무성하며, (가을에는) 바람과 서리가 차갑고, (겨울에는) 눈과 달이 서로 얼어 빛나며, 사철의 경치가 서로 다르니 흥취 또한 끝이 없는 곳」. 조선의 거유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그 곳에 도산(陶山)서원을 세웠다.
그 곳에서 「세상의 번롱(飜弄)을 벗어나 책을 읽다가 뜰마루에 나가 연당(蓮塘)의 연꽃을 구경하기도 하고, 단에 오르기도 하고, 밭을 돌면서 약초를 심기도 하고, 숲을 헤치며 꽃을 따기도 하면서, 평범한 마음으로 지내며 사물의 근원과의 만남을 꾀하고 이치를 궁구(窮究)하였다」.
조선 성리학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서원은 선비들의 기개와 순일(純一)한 지조가 서린 곳이다. 서원은 선비들이 학문을 익히고 선현들의 제사를 모시던 곳으로 지역주민에게 옳바른 삶의 방법을 제시하는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다.
이상해 성균관대 건축과교수와 문화재전문 사진작가 안장헌씨가 심혈을 기울여 정리한 「서원(書院)」(열화당)은 독창적인 유교문화의 본향이 됐던 서원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있다. 경북영주의 소수(紹修)서원, 안동의 도산서원, 전남 장성의 필암(筆巖)서원, 전북 정읍의 무성(武城)서원등 현존하는 주요 서원 64곳을 소개하고 있다.
각 서원의 연혁과 봉향(奉享)인물, 건축형태에 대한 정갈한 글과 직접 측량해 기록한 배치도, 550여컷의 생생한 사진이 곁들여져 서원을 중심으로 가꿔져온 유교문화의 원형을 살필 수 있다.
조선 최초의 서원은 풍기(豊基)군수 주세붕(周世鵬)이 1542년 고려말 성리학자 안향(安珦)을 기려 세운 백운동(白雲洞)서원인데 뒤에 퇴계의 노력으로 사액(賜額)서원이 됐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서원을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학(道學)을 실현하는 도장으로 삼았다. 그러나 조선 후기 성리학이 허례허식으로 치닫는 바람에 많은 병폐를 낳기도 했다. 이 때문에 조선말 흥선대원군은 전국에 47개의 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폐했다.
이상해 교수는 『서원의 폐해만 볼 것이 아니라 서원의 본래 기능이 무엇인가를 되새겨야 한다』며 『서원은 우리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 가려고 노력한 선비들의 맑은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현장』이라고 말했다.
사진 안장헌<김철훈 기자>김철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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