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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시비/조재용 논설위원(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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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시비/조재용 논설위원(지평선)

입력
1998.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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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잡아온 피의자를 의자에 앉힌다. 정방형의 좁은 방안에는 조잡한 책상 하나가 마주해 있고, 바로 옆에는 사진관에나 있을법한 조명기구가 세워져 있다. 이어 들어온 형사는 창가의 블라인드를 모두 내린다. 오후의 햇볕이 완전히 차단된 방안은 금세 깜깜해진다. 형사가 조명등 스위치를 올리자 피의자의 얼굴 위로 강렬한 빛이 발사된다. 다음날 동틀무렵 형사는 블라인드를 다시 걷는다. 까칠한 얼굴로 지쳐버린 피의자는 고개를 떨구고 있다.■범죄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70년대 프랑스 경찰영화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메마르고 비정한 형사의 취조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구타 등 신체에 물리력을 가하지 않은 채 단지 잠을 재우지 않는 방식으로 자백을 얻어냈음을 짐작케 한다. 영화에서 암시되는 것은 피의자와 경찰간의 실랑이나 옥신각신 없이도 자백하게 만드는 냉정한 수사기법이다. 주먹질 발길질은 없었지만 잠을 안재우는 것은 가혹행위로 불릴 만하다.

■검찰이나 경찰의 수사는 전문적인 영역이다. 어려운 사건일수록 증거를 찾아내고 부인으로 일관하는 피의자로부터 사실을 이끌어 내려면 고도의 수사기술이 필요할 것이다. 죄책감이 들게 하거나 모욕감을 불어넣어 피의자를 무너뜨리는 식의 심리학도 동원된다고 한다. 군사정권시절 수사기관에 불려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취조실에 들어서자 마자 무릎을 꿇리거나 구타 등의 폭행을 당하는 일은 「기본」이었다고 전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신체감정서가 법원에 제출되면서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피의자들에 대한 고문여부가 다시 쟁점화하고 있다. 「고문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외력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국과수의 의견은 애매하기 짝이 없지만, 그렇다고 섣부른 결론을 내릴 일도 아니다. 고문이라 하면 으레 전기고문이나 물고문, 「통닭구이」등의 본격적인 고문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한두차례 주먹질도 사라져야 할 고문이다. 고문시비의 결말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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