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유대인 역사적 화해11일 2만여명의 신도들이 모인 로마교황청 성베드로광장.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나치의 유대인대학살(홀로코스트)의 희생자인 카르멜회 유대인 수녀 에디스 슈타인(사진)을 성인으로 선포하고 슈타인의 사망일인 8월9일을 「유대인 대학살의 날」로 정해 매년 기리겠다고 발표했다.
로마교황청이 금세기 최초로 유대인 성인을 인정함으로써 교황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로마교회의 역할과 역사 인식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교황청은 인류사상 최대참극이라는 유대인학살을 적절히 막지 못하고 오히려 나치정권에 협력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16일로 재위 20년을 맞게 되는 요한 바오로 2세는 지금껏 280명을 성인으로 선포, 최다 성인을 배출시켰다. 금세기 문제를 다음 세기까지 넘기지 않겠다는 교황의 의도는 유대인과 로마교회의 화해로 절정을 이룬 셈이다.
교황청은 3월 나치 만행을 중지시키지 못한 「유감」을 표시한 적도 있다. 이날 시성식에는 슈타인 수녀의 유족과 헬무트 콜 독일 총리도 참석했다.
슈타인 수녀는 1891년 독일 브레슬라우(현 폴란드 보로츨라프)의 정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괴팅겐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으나 점차 가톨릭에 관심을 보이다 카르멜회 수녀가 됐다.
1942년 나치는 히틀러를 비판하는 네덜란드 주교들에 대한 보복으로 네덜란드의 유대인 개종자들을 아우슈비츠로 끌고갔다. 스위스로 도망할 수도 있었던 슈타인 수녀는 『내 형제 자매들과 운명을 같이 하지 않는다면 내 인생도 파괴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순순히 나치에 이끌려 그해 8월 9일 아우슈비츠가스실에서 사라졌다.
그에 대한 시성 요청은 62년부터 시작돼 20여년만인 87년 성인의 직전 단계인 순교자로 복자(福者)에 올랐다. 그해 미국에서 그의 세례명 「테레사 베네딕타」의 이름을 딴 2세 어린이가 진통제 과다복용으로 사경을 헤매다 가족들이 세례명앞에 기도한 끝에 놀랍게 회복한 일이 있었다. 교황청은 이를 성인 판단에 필요한 「기적」으로 받아들였다.<김정곤 기자>김정곤>
◎교황청의 나치 협력/홀로코스트 수수방관/유대인 약탈재산 이용
로마 교황청에 쏟아지고 있는 홀로코스트 책임론은 크게 두가지다. 2차대전 당시 교황청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방조했다는 것과 나치정권이 유대인에게 약탈한 재산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가톨릭교회의 첫번째 혐의와 관련, 지난해 프랑스 주교단은 『홀로코스트가 자행될 때 침묵으로 일관한 과오를 인정한다』면서 공식적인 용서를 빌었다. 올해 3월 교황청도 공식적인 유감을 나타내는 고해성사를 통해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올해 6월 미 국무부가 공개한 「2차대전중 나치 협력국가와 나치가 약탈한 자산의 처리 보고서」에 나타난 적극적인 혐의에 교황청의 입장은 난감하다. 보고서는 당시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 있던 교황청의 고위관리들이 전후 친나치 정권인 우스타샤의 전범들을 은신시키는 데 나치가 유대인 희생자들로부터 약탈한 금괴를 이용했다고 고발했다. 또 우스타샤정권이 유대인 5만명과 세르비아인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 정권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다만 당시 교황인 피우스12세가 관여했음을 입증하는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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