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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 10대,그들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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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어… 10대,그들만의 대화

입력
1998.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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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불만 해소와 또래집단 결속력을 다지며/기성세대를 따돌리는데 쾌감을 느낀다/그러나 갈수록 저속·폭력적으로 변해가는데…「야자시간에 담탱이 몰래 압구리에서 따순이 빼고 노는게 짱이야』

요즘 10대들의 대화이다. 이런 문장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성세대들이 얼마나 될까. 이 문장의 뜻은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담임선생님 몰래 압구정동에서 재미없는(따돌림받는) 아이들을 빼놓고 노는게 제일 재미있어」이다.

그들만이 사용하고, 그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10대들의 대화는 「은어 천국」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은어를 만들어내고, 유행시킨다. 10대들은 은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자신들만의 비밀스런 문화세계를 만끽하며, 기성세대를 따돌리는데 일종의 쾌감을 느낀다. 은어를 통해 현실에 대한 욕구불만을 발산하고 또래집단의 결속력을 다지기도 한다.

그들만의 언어는 직설적이고 선정적이다. 담탱이 생선 교도관 수면제 반시체 등은 모두 교사를 일컫는 은어이다. 친구들사이에 따돌림 당하는 아이를 「왕따」「따순이」라고 부른데 이어 영원히 따돌리는 애 「영따」가 등장했다. 모범생은 「범생이」,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는 학생은 「날범생」으로 통한다.

최근들어 청소년 은어는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빵(기념식) 빽(선배) 좁밥(인기없는 연예인) 원빵(패싸움) 콩(성관계) 등 격음과 경음이 뒤섞인 거센 어감이 주류를 이룬다. 화가 났을때는 「열받는다」는 고전적 표현외에 「빡오른다」「뚜껑 열린다」「빡돌다」「조꼴다」등이 쓰인다. 뭔가를 강조하고 싶을때는 「열라」「대땅」「캡」「짱」등을 쓴다.

청소년들은 그저 습관적으로, 또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은어를 사용한다. 은어나 속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어쩐지 이상하고 소외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Y여고에 다니는 한 학생은 『은어를 모르는 친구들은 따돌림을 당하거나 바보취급을 당한다』며 『꼭 또래에 끼이기 위해서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은연중에 그런 생각이 배어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J중학교가 학생 2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대화에서 은어나 속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대부분이거나 반정도(41%)에 이르렀다. 특히 고학년이 될수록 은어를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어사용 이유는 『친구따라서』(42%), 『재미로』(28%), 『통하니까』(18%), 『멋있어 보여』(11%) 등의 순서였다.

청소년 은어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청소년들은 그들 눈에 비친 사회상과 세태를 은어나 속어로 풍자함으로써 창조적인 능력을 기르고 동시에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효과를 얻기도 한다. 적당한 은어사용은 사회와 청소년 문화에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서울대 조용환 교수(교육학)는 『청소년을 억압하는 사회구조가 탈표준적 언어행위를 조장하고 있다』며 『과도한 학력경쟁으로 인해 학교 안팎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청소년들에게 말놀이는 파격과 해방의 장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은어·속어가 갈수록 저속화하는 것이다. 때론 심각한 언어공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저속한 은어 남용은 청소년들의 건전한 심리발달에 해를 끼친다. 춘천고 조주현 교사는 「학생 은어사용의 실태 및 분석」이란 연구논문에서 『학생은어의 형성요인이 성적 호기심, 적대적 경쟁심, 이기심 등으로 급격히 변질되고 있으며 은어의 사용방법도 파괴적이고 비정서적인 측면으로 급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성세대가 청소년의 은어를 문제시하기보다는 정상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지녀야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청소년 언어문화가 미래지향적이며 긍정적인 측면으로 발달하도록 하는 동시에 바른 말, 바른 표현의 범주를 크게 일탈하지 않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청소년 전문상담기관인 「청소년대화의 광장」 김진희부장은 『청소년 정서를 순화하려는 교육현장의 노력과 함께 그들이 긍정적이며 활기찬 일상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주는데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남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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