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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일관계를 위하여/金長權 숭실대 교수·정치학(한국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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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일관계를 위하여/金長權 숭실대 교수·정치학(한국시론)

입력
1998.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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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지향 전략 성과 불구 과거사문제·문화개방 등 부작용 줄일 정책배려 필요”과거의 일방적인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관계 전환을 주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번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 외교는 그런 의미의 어려움 속에서 이루어졌다. 과거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받은 한국과 일본은 거의 일세기를 끌어온 감정적인 반목을 극복하고 국경없는 경제, 무한경쟁의 시대, 좁아져가는 지구촌에서 서로 바짝 붙어 있는 이웃으로서 커다란 관계 전환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미워하는 관계에서 협력자 관계로 바뀌기 위해서 제일 자연스러운 해법은, 가해자측이 진지하게 반성하여 보상과 함께 용서를 청하는 일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본은 그러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한일 두나라간의 외교는 이제껏 기묘한 모습을 보여 왔다. 한쪽은 과거의 빚을 독촉하며 떼를 쓰고 한쪽은 시큰둥하게 마지못해 미안했다며 한두푼 집어 주는 형국이었다.

이번 방일외교의 특징은 「버림으로써 얻는」고도의 외교 전략이다. 대일외교의 핵심적인 지렛대로 사용해 오던 과거사 문제를 무기로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그 외교적 효용성을 오히려 극대화하는 획기적인 방향 전환을 시도하였다. 역사적 반성 문제는 일본측에게 과감하게 던지고 그대신 두 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큰 그림을 제시하였다.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 선언」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과거사 반성 문제는 무대 한쪽으로 비켜 섰지만 그 의미는 사실상 더욱 커지고 무거워졌다. 일본은 이제 스스로 깊은 역사적 반성을 행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것이 충분하지 못하면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은 달성되지 못할 것이며, 그 책임은 일본에게 돌아 갈 것이다.

한국의 외교는 과거사를 근거로 일본의 반성과 협력을 촉구하던 「과거 주도형」에서 미래에의 비전을 통해 과거를 청산하게 만드는 「미래 주도형」으로 변신했다. 상대의 약점을 지렛대로 삼아 따지던 외교로부터 마음을 비우고 상대의 의지와 자발성을 존중하는 자신있는 외교로 성장하였다.

이는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다는 외교의 기본 원리에 충실한 노선이기도 하다. 한국은 과거사 문제에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하고 일본 천황 명칭을 인정하였으며,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약속하였다. 그 대신 주로 경제적인 분야에서 일본측의 적극적 협력을 얻어 내었다. 일본 수출입은행으로부터 30억 달러 차관을 확보하였고, 민관투자촉진협의회와 이중과세방지협약 등을 통해 투자 분위기를 조성하였으며, 상호 기술 및 인적 교류에 대한 일본측의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 냈다. 현재의 성과만을 놓고 본다면 명분에서나 실리에서나 분명히 성공적인 외교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번의 양보들은 문제점과 위험성들을 상당히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사 문제의 경우, 여하튼 일단락을 본 것이므로 외교적 지렛대로서 사용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천황 방한문제만 하더라도 일본의 전후청산 프로그램의 가장 큰 부분에 속하는 만큼 결코 적당히 넘어가서는 안될 일이다. 또한 일본 대중 문화 개방을 허용함으로써 봇물같이 밀려 들어 올 일본 문화에 대해 우리 대중문화가 침해받지 않을지, 그와 함께 일본 상품들이 밀고 들어와 판치지 않을지 크게 우려된다.

이런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진정한 파트너십을 이루어내는 관건은 앞으로 국내적인 정치 행보와 정책 운용에 있다. 대외적으로는 포용의 정치를 하면서 대내적으로는 그러지 못한다면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행태로 치부되어 국민의 마음을 잃을 수 있다. 또한 이번에 양보한 과거사 문제나 문화개방에서 오는 부정적인 영향을 극복할 수 있는 정책적 배려가 충분하지 못하다면 장기적으로 우리 국민에게 큰 짐을 지울 수 있는 경솔한 외교로 평가될 수도 있다. 21세기에 잘 대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한일관계에로의 과감한 전환은 그 어렵고도 의미있는 과정의 일환이며 모든 국민이 함께 해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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