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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잔치’ 노벨문학상/하종오 문화과학부 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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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잔치’ 노벨문학상/하종오 문화과학부 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8.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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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만큼 정치적인 것도 없다. 이때 정치적이라는 말은 우리가 늘상 보는 이전투구 정치판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한 나라의 국민을 통합하고 그 나라의 위상을 바로 세운다는 의미에서의 정치다.포르투갈은 지금 축제분위기다. 76세의 노작가 주제 사라마구가 노벨문학상이 생긴지 98년만에 처음으로 수상자가 됐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이 어떤 나라인가. 15세기 이래 해양개척과 신대륙 발견으로 세계사를 창조했던 영광의 나라, 그러나 이후의 몰락으로 지금은 세계의 변두리로 전락한 나라. 사라마구의 작품세계는 한 마디로 이런 조국의 역사와 현실을 재해석하고 그 나아갈 방향을 자신만의 언어로 제시한 것이다. 변방의 작가지만 그의 작품은 20여개 언어로 번역됐다. 수상소감 일성은 『더 많은 사람들이 포르투갈어를 읽고, 포르투갈이 점점 더 중요한 나라가 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포르투갈의 잃어버린 500여년의 영광을 이번 수상으로 되살릴 수 있다는 꿈을 말한 것이다. 그는 「정치적」 작가다.

우리는 해마다 10월이면 노벨문학상 발표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그뿐이다. 남의 잔치 구경이다. 1889년 「한국민담집」이 미국에서 번역된 이후 올 9월까지 나온 우리 문학 번역본은 507종. 일본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한 사람의 번역본보다도 적다. 스웨덴 한림원 도서관에 있는 한국문학 스웨덴어 번역본은 단 5권. 『한국은 알파벳 순으로나 줘야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한 문학인의 자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문학상 하나 받는 게 뭐 대수인가 하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어린 아이가 말을 깨쳐 비로소 사람이 되듯, 한 민족은 자기언어를 꽃피울 수 있을 때 세계 속에 설 수 있다. 그 언어를 다루는 문학이야말로 문화의 뇌수이다. 우리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척도로 노벨문학상을 다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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