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꾼’들이 새 시대 재즈를 꿈꾸며/한국 음악 즉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히노 테루마사민속음악 즉흥에 반해 트럼펫으로 대금소리/사토 마사히코“재즈라는 단어조차도 역사속으로 사라질것”재즈적인 리듬이나 재즈적인 음률만이 재즈는 아니다. 현장에서 호흡하고 전통을 새롭게 탄생시켜 내는 정신이 재즈이다. 아시아 최고의 재즈맨들은 지금 한국의 음악적 자산에 주목, 새 시대의 재즈를 꿈꾸고 있다.
일본의 세계적 재즈 피아니스트 사토 마사히코(佐藤允彦·57). 『언젠가는 「재즈」라는 단어조차 폐기돼, 역사의 유물로 사라질 것이다』고까지 말한다. 다소 과격한 이 주장은 80년대 중반 이후「포스트모던 재즈」라는 이름 아래 가속화하고 있는 재즈의 혼란상을 표현하기 위한 것. 재즈만의 특징이었던 스윙이나 블루 노트 같은 음악적 장치를 팝은 물론, 클래식까지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현실에서 『재즈의 진정한 가치는 즉흥』이라고 말한다. 이때문에 즉흥성을 강조하는 민속음악이 즐겨 차용된다.
90년 이래 매년 2회 도쿄 신주쿠(新宿)등지에서 그가 벌여오고 있는 음악제 「란두가(Randooga)」는 그같은 믿음의 결집체. 세계의 민속음악을 테마로 각지의 1급 재즈 뮤지션들과 즉흥 합주하는 실험음악 프로젝트다. 『단순성과 유연성의 실험장』이라고 그는 말했다. 바로 그가 말하는 즉흥음악, 즉 재즈의 요체다. 그가 9월16일 첫 내한, 재즈 피아니스트 이영경과 「Two Pianos」 합동공연을 펼쳤을 때도 2시간 공연 전부가 팝과 민속 음악의 간략한 주제에 근거한 즉흥이었다. 특히 「타령」등 앙코르 3곡은 전혀 준비되지 않았던 곡으로, 완전한 현장 음악이었다.
즉흥성은 원래 우리 전통음악이 풍성히 갖고 있던 자산. 이때문에 아시아의 최고 재즈맨들은 한국음악에 매료되고 있다.
4월23일 내한, 「이정식 신보 발매 기념콘서트」에 참여했던 트럼페터 히노 테루마사(日野皓定·56)는 60년대부터 전세계 재즈의 본류를 타온 아시아 유일한 재즈맨. 그가 최근 들어 한국음악의 즉흥성에 깊이 빠져 있다. 3년 전 국립국악원 민속연주단 수석주자 원장현(元長賢)씨로부터 대금을 직접 배운 것이 계기.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등 동양의 음악어법을 적극 용해시킨 근작 「Off That Coast」에서는 최초로 트럼펫으로 대금 소리를 냈다. 또 태평소로 「아리랑」등을 직접 연주하기도 한다. 사토와 히노는 서구에서 나온 재즈교과서에도 반드시 언급되는 아시아 최고의 재즈맨이다.
물론 재즈의 즉흥정신은 아시아 재즈맨들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윈튼 마살리스의 뉴욕 재즈 오케스트라(NJO) 단원 테드 내쉬(Ted Nash·40·색소폰)같은 정통파는 『인기와 돈을 좇을 때, 재즈는 팝음악이 된다. 재즈의 가치는 잼 세션처럼 복제 불가능한 현장성』이라고 했다. 전위파인 몽골 태생의 재즈 보컬리스트 사인호 남치락(41)도 『쉬고 있는 두뇌에 충격을 줘 직관적 각성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라고 목표를 밝혔다.
미국 뉴올리안스에서 시작된 재즈는 이제 한국음악 특유의 즉흥성을 만나 제2의 개화기를 맞고 있다.<장병욱 기자>장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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