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학생의 예리한 질문에 교관도 궁지”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누구보다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일본인이 있다. 목포상고 시절 2년 반동안 담임을 맡아 학생 김대중에게 『인생이 싸움의 연속이라면 깨끗하게 싸워라, 깨끗하게 싸운 뒤에는 무언가가 남는다』고 가르쳤던 무쿠모토 이자부로(木京本伊三郞·80)씨. 김대통령이 『조선인과 일본인을 차별하지 않았던 분으로 많은 격려를 받았다』고 회고한 바 있는 바로 그 「은사님」이다.
요코하마(橫浜)의 자택에서 목포상고 졸업 앨범을 펼치며 그가 생생히 떠올린 김대통령의 학생 시절 모습은 『3년 내리 반장을 지냈고 체격도 좋아 일찌감치 지도자의 자질이 있던 학생』이다.
무쿠모토씨는 나가사키(長崎)대학의 전신인 나가사키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21세의 나이로 목포상고에 부임했다. 일본인과 조선인 학생들이 반반인 160명 가운데 창씨개명으로 「도요타(豊田)」 소년이 돼 있었던 김대통령은 늘 1등이었다.
학교에서 열린 시국강연회에서 군사교관으로부터 아시아 정세 설명을 듣고 예리한 질문을 끄집어 내 교관을 궁지로 내 몰던 기억도 또렷하다. 그는 『언제나 말에 설득력이 있었다』며 『졸업후 장사꾼이 되는 것보다 변호사가 되는 것이 낫겠다고 권한 적도 있다』고 옛생각을 더듬었다.
무쿠모토씨는 전후 외교관으로 변신, 에티오피아 우루과이 대사 등을 역임했다. 「김대중 납치사건」이 일어난 73년 당시는 주 터키 공사를 지내고 있었다. 그는 『뉴스를 듣고 구명운동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외교관으로서 불가능했다』며 『생존이 확인된 후 아무런 도움이 못돼 미안하다는 편지를 동교동으로 보냈으나 편지는 끝내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회상했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