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출발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두나라의 「동반자관계 설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국이 불행했던 과거사를 딛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자는 의미다. 두나라는 김대통령이 4일간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21세기를 향한 새 파트너십을 위한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각종 협력관계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행동계획」도 발표할 예정이다.미래지향적인 관계구축은 양국간의 시대적 소명이기도 하다. 우리가 김대통령의 방일에 전례없이 큰 기대를 갖는 것은 지금이 양국관계를 한단계 높일 수 있는 적기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미 양국은 일본의 일방적 파기로 한동안 갈등요인으로 작용했던 어업협정을 마무리지었다. 위안부문제도 피해자인 우리측이 해법의 물꼬를 열었다. 또 한동안 양국관계를 옥죄어 왔던 김대중납치사건도 역사 속에 묻기로 하는등 그 어느 때보다도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의 틀을 마련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그러나 양국의 진정한 관계발전에서 항상 걸림돌이 돼왔던 것은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인식이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그동안 두나라 정상들이 만날 때마다 양국관계 개선방안이 논의되었고, 일본은 나름대로 과거 침략행위에 대한 유감의 뜻을 밝혔으나, 분명하고 솔직한 사과로 받아들이기에는 항상 미진한 느낌이 있었다. 마지못해서 하는 사과 뒤에는 언제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는 망언(妄言)이 잇달았고, 한국 국민들은 일본의 진심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미래지향적인 관계구축을 위해서 아픈 과거를 하루빨리 묻어버리자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같을 수는 없다. 지난 75년 5월 발터 셀 서독대통령은 패전 30주년 기념연설에서 『우리 스스로의 과거를 잊지 않을 때에만 우리들은 다시 자랑스럽게 독일인이라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연설은 일본에 타산지석의 교훈이 되어야 한다. 독일이 나치스의 불행한 유산을 안았듯이 일본도 군국주의의 야욕이 저지른 부(負)의 역사를 안을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세계의 경제대국이라는 위치에 걸맞은 수준의 양식으로 자신의 과거를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도 우선 주변국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 급선무다. 이번 김대통령의 일본방문에서 두나라가 과거사를 확실하게 매듭지음으로써 「사과의 강도」에 대한 비생산적인 갈등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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