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앞장 재일동포 김종충씨/“대통령 심정 이해는 하지만…”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73년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은 역사 속으로 묻힐 전망이다.
이미 드러난 뼈대에 살을 붙이는 진상규명 작업은 계속되겠지만 적어도 한일 양국간 「현안」으로서의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김대통령은 방일 기간중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의 공식 방일 자체와 납치사건에 대한 언급 회피는 사실상 74년 한일 양국간의 「정치적 해결」을 추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같은 흐름을 지켜 보는 재일동포 김종충(金鍾忠·77)씨의 감회는 남다르다. 전남 신안군 하의면 오림리 출신인 그는 김대통령과 함께 하의보통학교(초등학교)를 다닌 죽마고우이자 납치사건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자신이 8층에 살고 있던 도쿄(東京)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의 하라타(原田)맨션 11층에 사무실을 얻어 김대통령에게 피난처로 제공했고 사건 이후 구명운동에 발벗고 나섰다. 조직 활동과 거리가 멀었던 그가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 국민회의(한민통)」 국제국장으로 동교동과의 연락을 전담한 것도 이런 각별한 인연 때문이었다.
지난 25년여 동안 이 일에 매달려 온 그는 「납치사건」이 역사의 뒷전으로 사라지는 데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이제 피해자 자신이 대통령으로 정부를 이끌고 있으니 과거 정부의 부당한 행위조차 걸머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말했다. 또 『사실은 김대통령이 95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벌써 사건의 「정치적 해결」을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그전에는 일본을 거쳐 가더라도 늘 공항에 머물고 도쿄(東京)에 들어 오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통령의 심정을 이해는 하면서도 아직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대통령이 당시 한민통 관계자는 물론 구명운동에 힘썼던 일본 인사들을 위해 9일 오전 영빈관에서 다과회를 여는 것은 위로의 의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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