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위기 불구 국정파행 없어 탄탄한 민주제도 정착 반증 우리 현주소 돌아봐야”성추문으로 야기된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위기는 미의회가 탄핵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절차에 공식착수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앞으로 탄핵절차가 어떻게 전개될지와는 별개로 몇달동안 미 조야를 들끓게 했던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미국 민주주의를 새삼 돌이켜볼 기회를 갖는다.
미국 헌법에 규정된 민주주의 통치원리는 한 개인이나 다수 세력의 일방적 행동을 제약하는 데에 우선순위를 둔다. 다양한 세력들이 서로를 견제하고 권력의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타협을 통해 통치하는 것이 미국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이다. 아무리 인기 높은 대통령이라도 의회로부터 심대한 제약을 받고, 의회의 다수입장도 소수입장을 무시할 수 없다.
클린턴 성추문은 이러한 민주주의 시스템이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는데 큰 의미를 갖는다. 장기간의 호황으로 클린턴의 지지도는 매우 높지만, 고집스러운 한 특별검사가 클린턴의 비윤리적 혹은 탈법적 행위를 캐내려 달겨드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공화당이 다수인 의회는 탄핵 절차를 시작함으로써 대통령에 대한 압력을 점증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의회가 일방적으로 탄핵을 밀어붙일 수는 없다. 비록 수에서 뒤질지 모르지만 탄핵에 반대하는 양당 의원들의 의견을 묵살할 수 없다. 또한, 설혹 과반수의 의원들이 탄핵의 필요성에 절대 동감한다하더라도 여론의 호응이 없는 상황에서는 쉽게 정치적 행동에 옮길 수 없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중차대한 정책결정을 해야하는 미국 대통령이 개인적 일로 인하여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국정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그러나 막상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클린턴의 위기를 개인적 문제로 보지, 정부 전체의 위기로 보지 않는다.
비록 선정주의를 추구하는 미국 언론이 클린턴 스캔들과 탄핵 논쟁에 과대한 초점을 맞추고 그 의미를 확대포장하지만, 정부의 정책 결정과 집행은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조적으로, 만약 한국의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있다면 정부의 국정 수행은 아마도 거의 마비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대통령 탄핵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훨씬 덜한 사안에 대한 교착적 대립때문에 국회가 실종되어버리는 판국이니 말이다.
어떠한 이유로 인해 클린턴 탄핵 위기가 곧바로 미국의 국정위기로 이어지지 않을까? 미국 민주주의가 그만큼 제도화되어있기 때문이다. 정책문제의 제기, 심의, 결정, 집행의 제반 과정이 몇몇 개인의 의지보다는 주로 제도적으로 규정된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영향력이 물론 막강하지만, 대통령 개인이 제 역할을 못할 경우라도 미국 민주주의 통치과정은 원활히 진행된다. 제도화하지 않은 통치과정에서 행정부 수반의 위기는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국정 전반의 문제로 확대되지만, 미국에서는 그러한 위험성의 잠재력이 약하다.
클린턴의 위기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되짚어보며 가상적 질문을 떠올릴 기회를 제공한다. 만약 한국 대통령의 탈법적 행위가 불거진다면 과연 탄핵 논의를 쉽게 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는가? 탄핵 논의시 소수측 입장도 존중, 고려될 수 있을까? 한국 대통령의 탄핵 위기가 전체적 국정 위기로까지 비화되지 않고 개인 문제로만 머물 수 있을까? 이러한 가상질문들에의 답은 굳이 밝히지 않아도 자명한 듯하고, 그러한 답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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