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은 약 1,500년간의 교류·선린·대결의 역사를 가져왔다. 그동안 왜구의 침략,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7년간의 조선침략, 그리고 35년간 일제의 식민지 지배 등 잊을 수 없는 불행한 역사도 있었지만 길고 긴 교류와 선린의 역사도 있었다. 특히 65년 한일 국교수립후 두 나라 사이의 인적, 물적 교류는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지금까지 한일 두나라는 국제무대에서는 상호협력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두나라의 쟁점에 관해서는 양보와 타협이라는 정상적 교섭의 여지가 너무 좁았다. 지난 5년간 일본에서는 혐한(嫌韓)분위기가 확산되어 온 것이 사실이고, 최근에 와서는 피한(避韓)의 무드가 지배적이다. 일본의 입장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국내 경제문제이고 심상찮은 갈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일관계가 대외관계의 주축이며 현안문제로서는 일러관계가 최우선 순위에 있다. 더군다나 최근 북한의 「미사일사건」으로 일본의 대북경계심은 한 때 준전시상황을 방불케했으며 일본의 입장에서 볼 때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요구하는 한국은 잠시나마 피하고 싶다는 것이다. 과거를 청산하고 참다운 한일협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역사의 청산은 쉬운 것이 아니며 청산이라는 어휘자체가 두나라 국민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한일간의 쟁점을 풀고 21세기를 향한 한일협력의 틀을 만들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다. 우선 어업협정이 타결됨으로써 한일간의 쟁점을 외교교섭으로 해결한 선례를 만들었고 김대통령의 방일을 순조롭게 하는 양국 정부의 노력을 읽을 수 있다.
현재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두 나라 국민이 만족스럽게 받아들이고, 한국의 항일 우국지사와 일본의 극우세력의 호의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해결책은 없다. 설사 어느 정도의 타협과 절충의 차선책이 나오더라도 또다시 일본의 일부 세력의 망언이 나올 수 있고 이에 대한 한국인의 반발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두 나라 정상회담에서 과거사 문제는 지금까지 일본정부가 제시한 것 가운데 가장 양질의 과거사 인식이라고 할 수 있는 무라야마(村山)담화의 내용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주체를 구체화하는 수준이 될 것이다.
대중문화의 개방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더 이상 문을 닫고 있을 수 없다. 일정한 기준설정은 필요하나 이제 결단을 내릴 때이며 우리 국민도 어느 정도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군대위안부 문제는 유엔 인권위원회 차별 소위원회의 판단을 지지하되 그것을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에 강요할 것이 아니라 일본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안부 문제는 두 나라의 문제만이 아니라 일본인 자신의 문제이며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청소년 시민단체 지방자치단체의 교류는 이미 놀라운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더 활성화하도록 두 나라 정부가 협력해야 할 것이다. 두 나라 학자들의 공동연구나 기업간 협력은 많을수록 좋다. 특히 최근에 와서 일본기업이 환경오염을 막으면서 기업이윤을 확대할 수 있는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들과의 협력은 무엇보다 긴요하다.
작년 한국의 외환위기때 단기를 중장기로 연장한 외채 217억 달러중 일본이 37%를 차지한 사실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한국이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는데 있어서 일본의 투자와 자본협력은 빼놓을 수 없다.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현재를 냉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대통령은 자력으로 민주화를 쟁취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그 자신이 일본의 많은 민주시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담담하고 당당하게 일본의 지도자들과 마주 앉아 한일양국의 미래를 구상해주기 바란다.<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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