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선진국치고 정치가 잘못되는 나라가 없다. 정치가 낙후된 후진국치고 잘 사는 나라도 없다. 정치와 경제는 서로 짝이 맞아야 나라가 잘 된다. 수레의 두바퀴처럼 정치 경제는 나란히 발전하는 것이며 어느 하나만 잘돼 가지고는 일정한 수준이상 발전이 불가능하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강조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론」도 바로 이같은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1만달러 소득 수준으로 한때 우리 경제는 선진대열에 진입할 조건을 갖추었다고 말들을 했었다.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도 그래서 했던 것이다. 그것이 불과 몇해전이다. 그러던 우리 경제가 하루아침에 몰락해버린데 대해 여러가지 구구한 원인분석이 있지만 그 가장 바닥에 있는 근본적인 원인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정치의 실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가 일정한 발전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법과 제도와 의식등 사회전반에 걸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역사의 정해진 경험법칙이다. 이른바 소득혁명을 겪으면서 나라의 틀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김영삼(金泳三)정부가 부르짖었던 변화와 개혁이 바로 이같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시도했던 개혁은 성공하지 못했고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경제의 발전단계에 상응한 정치발전이 실패했다.
오늘의 위기상황은 경제의 발전단계에 부응해서 일어났어야 할 법과 제도와 의식의 변화사회전반에 걸친 변화와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초래된 것이며 변화와 개혁을 주도하고 나라의 틀을 바꾸는 일을 담당해야할 정치가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경제는 제법 발전해서 선진국 문턱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정치는 아직도 개발도상의 후진적 체제제왕적(帝王的) 통치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1만달러 수준의 경제를 관리할 수 없는 정치력의 빈곤과 정치발전의 실패가 문제된 것이다.
국가적 위기론까지 나오고 있는 최근의 상황을 한걸음 물러서서 역사의 긴 눈으로 바라보면 이것은 선진화 단계의 중진국들이 유행병 처럼 앓는 일종의 민주화 열병이고 혼란이다. 6·29선언과 87년의 노사대분규 이후 10년 넘게 앓고 있는 정치적 열병이고 민주화 과정의 시련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이른바 「마(魔)의 분수령」이라는 소득혁명의 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남미(南美)형 정치열병인 것이다.
우리 경제는 더 이상 민주화의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 여기서 주저앉아 좌절한 중진국이 될지, 후진국으로 몰락을 할는지, 그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다. 10년전이나 20년전이나 하나도 달라진 것 없이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고 국회의원들이 거리에 나가 화형식을 하고 가두투쟁을 벌이고 하는 이런 수준의 정치를 그대로 두고는 소득 1,000달러 정도의 경제도 감당하기 어렵다. IMF위기를 벗어나 선진국을 향한 성장궤도에 재진입한다는 것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지금 단계에서 가장 긴급한 과제IMF보다 오히려 더 시급한 과제는 정치판을 새로 짜서 근본적인 개혁을 하는 것이다. 정치가 달라지지 않고는 변화와 개혁이 있을 수 없으며 나라의 판을 새로 짠다는 제2의 건국도 성공할 수 없다. 선거제도와 정당구조, 정치자금에서부터 정치판의 물갈이와 권력구조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이고도 철저한 정치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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