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하르트 슈뢰더가 헬무트 콜을 무너뜨린 날,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사설을 시작했다. 『콜이 타이타닉호였다면 아마도 빙산이 침몰했을 것이라고 말한 한 독일 정치가가 있었다』콜은 그만큼 거함(巨艦)이었다. 150㎏거구에 걸맞게(그의 체중은 정확히 알려진 적이 없다. 국가 1급 기밀이라고 자신이 농담한 적이 있다) 그는 현대사의 큰 인물이었다. 슈뢰더의 등장보다 콜의 퇴장에 더 넓은 지면을 할애한 외국 신문이 있듯이. 총 한 방 쏘지 않고 독일통일을 이룩하고 「유럽 한 지붕」의 서까래를 깐 것은 비스마르크 재상 이래 가장 길었다는 16년 장기집권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난 밤은 나에게 어렵고 쓰라린 시간이었다. 나는 당의 노병으로 남을 것이다… 모든 것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나는 「만약」 「그러나」라는 말을 달지 않겠다… 유권자들의 결정을 존중한다. 인생은 계속되는 것이다』라는 귀거래사(歸去來辭)와 함께 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무엇이 거함 콜을 침몰시켰는가? 콜(68)에 비해서는 약관이랄 수 있는 54세의 슈뢰더, 20세 연하의 젊은 여자와 네번째 결혼한 그의 「새로운 중도(Neue Mitte)」가 콜을 「퇴출」시켰는가? 아니다. 세계의 언론들은 유권자들이 슈뢰더에 표를 던진 게 아니고 「미래」에 표를 찍었다고 보도했다. 콜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 아니라 새롭고 젊은 지도력에 대한 희구였다. 미래는 무엇인가? 미래에 표를 던진 것은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슈뢰더는 선거유세에서 『국가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우리는 준비가 돼있다』는 말을 애용했다.
슈뢰더가 한 축을 떠받칠 유럽은 이제 더이상 노(老)대륙이 아니다. 92년 미국이 전후세대의 기수 빌 클린턴을 선택했을 때 프랑스의 르몽드 사설 제목은 이랬다. 「유럽의 트럼펫은 누가 불 것인가」.
활력과 희망에 넘친 신대륙과 정체와 불안의 구대륙을 자조적으로 비유한 말이었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나 콜 총리, 대처를 승계해 보수당의 16년 집권선상에 있던 존 메이저 영국총리 등을 빗댄 것이다. 이들은 이제 모두 권좌에서 내려왔거나 땅에 묻혔다. 그 자리를 이른바 「68세대」(68년 프랑스의 학생운동)」의 슈뢰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리오넬 조스팽 프랑스총리 등이 차지했다.
유럽연합(EU) 15개국은 세계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통합열차」의 바퀴를 힘차게 굴리고 있다. 실업률이라는 장애물은 있지만 큰 흔들림없이 종착역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 이데올로기가 「제3의 길(The Third Way)」로 불리든, 「신신좌파(New New Left)」로 규정되든, 실용적 사회주의라는 노래를 합창하며 트럼펫을 불고 있다. 사회주의적 목표인 공동의 삶의 질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면서 자본주의적 요소인 경쟁과 효율을 조화롭게 가미하고 있다.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르네상스이며, 세계 경제위기의 파고에 함께 침몰하지 않으려는 대안이다.
유럽의 변화에 비해 클린턴 집권 6년이 돼가는 미국은 대통령의 허리 아래 스캔들과 경기침체 조짐으로 「슈퍼 파워」의 엔진이 종전같지 않다. 일본은 전후 최고의 불황과 엔화약세로 고전하고 있다. 중국만 그럭저럭 꾸려가고 있다. 우리나라와 동아시아 국가들은 고도성장의 대가를, 성공의 희생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중이다. 고통의 터널은 끝이 안 보인다.
21세기를 코 앞에 둔 세계는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다. 변화에 대한 적응, 미래에 대한 예지가 없는 나라나 지도자는 결코 트럼펫을 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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