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키스… 사랑의 열병… 색다른 섹스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추석만큼은 한국영화도 특별하다. 3일부터 선보일 영화는 3편. 약속이나 한듯 주제는 사랑의 몸짓에 집중돼 있다.
▷키스할까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우여곡절 끝에 해낼 때, 아름다움과 감동은 그만큼 크다. 여기서는 첫 키스다.
연예잡지 기자인 연화(최지우)는 27세이지만 행동이나 모습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유치하고 어설프다. 인터뷰를 하면서 녹음기와 펜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 쩔쩔매고, 조명기구를 넘어뜨려 영화 쵤영현장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그에게 신참 사진기자인 경현(안재욱)이 나타난다. 이때부터 연화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는 경현과 그것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연화의 해프닝이 시작된다. 장동건 이재룡 변우민이 카메오로 나온다.
「박봉곤 가출사건」의 김태균 감독은 사소한 갈등과 경현의 직장변동으로 인한 이별로 시간을 보낸후 마지막 애틋한 키스로 끝을 낸다. 10대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 인물의 성격이나 구성에서 새로움은 없다.
▷정사◁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열병. 그것도 유능하고 자상한 건축가인 남편과 아이가 있는 39살의 유부녀 서현(이미숙)과 미국에서 곧 귀국할 그의 여동생(김민)과의 결혼을 불과 20일 앞둔 20대 젊은 청년 우인(이정재)이 벌이는 불륜이다. 첫눈에 반한 우인이 주저없이 여자에게 사랑의 몸짓을 시도하고 여자 역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한듯 모든 것을 팽개치고 정신없이 섹스에 탐닉한다. 영화는 서현과 우인의 일탈을 분위기 있게 보여주는데만 신경을 쓴다. 때문에 대사보다는 영상, 정물화같은 이미지, 생략된 소품과 아름다운 공간선택으로 철저히 젊은 관객들을 겨냥했다. 그때문에 줄거리의 설득력이 약하다. 당연히 등장인물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없다. 이재용 감독의 데뷔작.
▷처녀들의 저녁식사◁
역시 섹스가 주제다. 그러나 성격이 전혀 다르다. 세 여자가 저녁식탁에서 거리낌없이 털어놓는 섹스에 관한 직설적인 수다는 호기심 자극이나 쾌락주의가 아니다. 그들의 각기 다른 생각은 여성이 자신의 섹스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가를 탐색하는 과정이다. 마치 음식을 먹듯 자유분방한 섹스를 주장하는 호정(강수연)은 진실한 사랑의 부재를 깨닫고, 반대로 섹스를 결혼과 결부짓는 연이(진희경)는 주체적인 성의 희열을 알게 되며, 경험없이 마음속으로 욕망만 키워오다 연이의 애인(조재현)과의 섹스로 임신까지 하게된 순이(김여진)는 억제의 위험을 체험한다. 지나친 정사장면이 전체 구성을 이따금 흔들지만, 신인 임상수 감독이 직접 만들어낸 재치있는 대사들이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이대현 기자>이대현>
◎외화/숨가쁜 액션·오락
추석을 맞아 외화는 4편이 개봉된다. 빠르고 생동감 넘치는 액션 오락물이 주류. 홍콩의 성룡과 할리우드의 장 클로드 반담이 서로 무대를 바꿨고, 연기의 황혼기에 접어든 앤서니 홉킨스와 숀 코너리가 노련미를 서로 과시한다.
「러시아워」는 할리우드에서도 『성룡은 스타』임을 확인시켜준 최신작. 장기인 리얼액션과 코믹한 연기가 LA 한복판에서 벌어진다. 「콘에어」의 짐 쿠프 감독은 넓은 무대와 숨가쁜 상황을 제공, 그의 재능을 최대한 이끌어 냈다. LA 한복판에서 마약조직에 납치당한 홍콩 고위층의 딸을 경찰 리(성룡)가 LA경찰청 사고뭉치 형사 카터(크리스 터커)와 짝이 돼 구해낸다. 차량이 계속 폭파되는 러시아워의 도심에서 펼쳐지는 성룡의 재치있는 액션은 누구도 흉내내기 힘들다. 반대로 홍콩을 찾은 장 클로드 반담은 「넉오프」에서 서극 감독을 만났다. 인형의 눈, 청바지의 단추로 위장할 만큼 작은 고성능 폭탄으로 테러를 감행하려는 러시아 마피아의 음모를 무역중개상인 레이(장 클로드 반담)가 CIA란 신분을 숨긴 친구 토미(롭 슈나이더)와 막아낸다. 서극의 영화답게 좁은 공간에서 유머가 섞인 빠른 액션이 쉴 새 없이 이어지지만 소란만 할 뿐 맥이 없다.
「어벤저」는 미국 네티즌들이 「올해 8월까지 개봉한 영화 베스트 10」중 1위로 꼽은 테크노 첩보물. 캐릭터와 분위기가 독특하다. 숀 코너리가 미치광이 과학자로 나와 카리스마를 자랑한다. 날씨를 조작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그에게 미모의 기상학자 에마(우마 서먼)와 영국비밀첩보원 존(랄프 파인즈)이 맞선다. 60년대 영국의 인기 TV시리즈를 제레미아 체칙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폭풍과 해일, 폭설등 첨단특수효과가 아니면 불가능한 자연재해들과 복고적 빅토리아풍의 의상, 초현실주의적 도시가 어우러져 묘한 느낌을 풍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에 참가한 「마스크 오브 조로」에는 활달하고 꾸밈없는 신세대 조로 알레한드로(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나온다. 그는 성급하고, 다혈질에 실수투성이다.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여인 엘레나(캐서린 제타 존스)를 보고는 첫눈에 반해버린다. 영화가 지나치게 가벼워지는 것을 막아주는 인물이 바로 한 세대 앞의 노련한 조로 돈 디에고(앤서니 홉킨스)다. 조로의 영속성을 상징한 신·구의 결합이다. 둘은 각각 아내의 원수와 형을 죽인 장교에게 복수한다. 조로의 사회적의미 보다는 배우의 매력으로 오락성을 높였다.<이대현 기자>이대현>
◎비디오/알찬 감동의 명작
추석연휴는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 좋은 비디오를 감상하면서 감동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 폭력이 난무하거나 싸구려 애욕을 포장한 오락물에서 벗어나 생활에 영감과 생기를 주는 비디오 한 편을 골라보자.
「시민이 뽑은 좋은 비디오」를 선정, 발표하는 서울YMCA의 추천으로 추석 연휴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명작 비디오들을 소개한다. 추천작 13편의 주제는 우주·환경문제, 위인들의 삶, 공동체의 아름다움 등으로 다양하다. 특히 추석에 걸맞게 음식을 매개로 한 감동을 담은 작품들이 3편 포함됐고, 애니메이션도 2편 들어있다.
「콘택트」는 외계와의 접촉을 시도하는 여자 천문학자의 환상적이고 감동적인 체험을 신비로운 화면에 담았다. 과학저술가로 유명했던 칼 세이건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조디 포스터 주연. 「뷰티풀 그린」은 햄버거와 자동차로 상징되는, 찌든 지구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코믹하게 그렸다. 「버닝 시즌」은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밀림을 지키려다 결국 자연에 순교하는 한 환경운동가의 삶을 통해 환경의 중요성을 강렬하게 일깨우는 수작이다.
「일 포스티노」는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집배원의 우정을 그린다. 가난한 섬마을 어부 마리오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연애시를 쓰기 위해 네루다의 도움을 받으면서 시와 삶의 은유를 함께 배운다는 내용이다. 「테레사수녀의 유언」은 프랑스의 마르셀 바우어 감독이 테레사수녀의 생전인 95년 가을 끈질긴 요청 끝에 테레사수녀의 신앙과 생활상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데 성공한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빅 나이트」는 이탈리아인 형제가 미국 뉴저지에 식당을 열어 성공하는 과정을 우스꽝스럽고도 재치있게 그려 96년 전미비평가협회에 의해 최고의 영화로 선정된 작품. 「바베트의 만찬」과 「스핏파이어 그릴」도 음식을 통해 인간관계가 회복되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렸다. 「바베트의 만찬」이 프랑스혁명을 피해 네덜란드로 옮겨온 바베트가 음식을 통해 완고한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이야기라면 「스핏파이어 그릴」은 조그만 음식점을 경영하는 여자 셋을 통해 자매애를 따뜻하게 그렸다. 「브래스트 오프」는 「트레인스포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완 맥그리거가 주연. 폐광 위기의 탄광촌에서 광원들이 만든 브라스밴드가 겪는 부침과 더불어 젊은이들의 사랑을 유머러스하게 담았다. 「비밀과 거짓말」은 백인 친어머니와 흑인 딸이 마음의 벽을 허물고 진실한 관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럼의 마녀들」이 원작으로 17세기 청교도공동체의 마녀재판을 그린 「크루서블」은 위노나 라이더와 다니엘 데이루이스의 연기가 돋보인다.
「오페라 복스」는 모차르트, 푸치니 등의 명작 오페라 6편을 각 30분 분량의 만화로 만든 화제의 애니메이션. 캐나다 국립영화제작소가 유명작가들의 수상작 18편을 엄선한 「애니메이션 단편영화 걸작선」도 온 가족들에게 감동을 줄 만하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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