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완승은 없다. 권투처럼 상대를 KO로 눕히는 것이 최선이라면 그것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예술이다. 여든 야든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때 민주주의 자체가 흔들린다.그런데 지금 우리 정치에서 여와 야는 마치 상대를 때려 눕히거나, 정 안되면 그로기 상태로 만들어 기권승을 거두려 하고 있다. 권투에서야 관중들이 KO승에 열광하지만, 그런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은 짜증나고 불안할 뿐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생결단식 싸움에 대해 여야 모두 나름의 이유를 댄다.
여당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경제를 결딴낸 게 누구인가. 경제가 이 지경이 된 가장 큰 이유가 정경유착때문이고, 그 부패의 고리를 끊기 위해 비리 정치인을 처벌하자는 것 아닌가. 더구나 국세청을 동원한 세도(稅盜)사건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야당만 잡아 간다는데, 과거에 검은 돈이 어디로 갔겠는가. 그러고도 사건의 본질을 희석시키려고 특정 지역만 돌아다니며 지역감정을 선동하고 있다」.
야당은 이렇게 말한다. 「사사건건 야당 탓이라고 하는데 여권이 집권후 제대로 한 일이 무엇인가. 오히려 자기네가 야당때 여당을 보고 공격하던 행태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 않은가. 예고해 놓고 사정 바람을 일으키면서 야당의원을 빼내가고 있는데, 이것이 표적사정과 야당파괴가 아니고 무엇인가. 생존을 위해 장외로 나선 것을 두고 지역감정 선동이라고 공격하는 데 지역연합으로 집권한 게 도대체 누구인가」.
그러면 국민들은 이 주장들을 보고 들으며 한쪽만 다 옳고, 한 쪽은 다 그르다고 할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다만, 정확히 계량하기야 어렵지만, 어느 쪽이 조금은 더 옳고, 어느 쪽이 조금 더 그르다고는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정치에서는 상대를 전쟁에서처럼 섬멸해야 할 적으로 삼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 여야는 이쯤해서 각자 사정정국의 득실과 공과표를 작성해 보고, 대화와 타협에 나서야 한다.
여당은 이렇게 입장을 정리할 수 있다. 「범죄혐의자를 처벌하는 것은 결코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국민의 다수도 정치개혁을 바라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국회를 마냥 단독으로 끌고 갈 수도 없다. 사정이 정교하지 못해 지지하는 국민조차 편파사정이 아닌가 하고 찜찜해 하는 것도 사실 아닌가. 야당이 믿도록 하려면 반대급부를 주는 것이 정치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국회에 들어갔다가 언제 소속의원이 또 불려갈지 모르고 그것이 무서워 또 여당으로 몰려가는 의원들이 있을 게 뻔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국회를 외면하는 것은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반성이 없는 정당으로 비난받을 수도 있다. 정치권 사정이 곧 마무리되는 게 확실하다면 현재 진행중인 사건 관련자의 처리절차는 논의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여야는 이제 또다시 사정을 둘러싸고 대치하는 일이 없도록 방안을 마련해 내야 한다. 비리 정치인을 처벌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언제든, 어떤 이유로든, 편파사정 시비가 일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과거 정권에서도 발생했고, 이 정권에서만 있을 일도 아니다. 나라 장래를 위해 객관적인 「비리정치인 사정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특별검사제든, 부패방지법 제정이든, 여야가 대치한 상황에서는 정략적으로 주장하고, 반대하기 때문에 진지한 논의가 어렵다. 여야는 혼돈스런 이번 상황을 정리하고 나면 이 문제를 깊이있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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