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못피운 ‘무궁화꽃’/‘공공연한 기밀’ 사실로/핵심 책임자 극비 대화 15건 문서 ‘생생’/“자주국방 실현” 朴 대통령 의욕 재확인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소설제목처럼 실제로 「무궁화꽃(핵무기개발)」을 피우려 했고 미국이 강력히 이를 저지한 사실이 미 국무부 비밀문서에서 생생히 드러났다.
물론 박대통령의 핵개발 의지를 둘러싼 한·미간의 갈등은 그동안 「공공연한 기밀」로 널리 알려져왔지만 양국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사각의 현대사」로 남겨둬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양국간의 이 부분에 대한 첫 공식자료인 공개문서는 미 정부가 한국의 핵개발 계획을 포기 시키기 위해 전개한 협박에 가까운 외교적 압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백악관과 국무부, 주한 미 대사관 등의 핵심 책임자들이 긴박하게 주고받은 극비 대화내용이 모두 15건의 문서에 소상히 담겨있다.
이번 공개는 빌 클린턴 행정부가 내세운 「냉전시대 재평가」 작업의 일환으로 백악관의 「정부 부처간 안보·보안 항소위원회」에서 공개를 결정한 96건의 외교문서중 일부다.
문서의 내용과 당시 상황을 종합해 보면 박대통령은 71년 미7사단이 철수할 때쯤 청와대 비서실을 중심으로 핵개발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원자력, 국방 관련 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해외 한국인 핵과학자를 스카우트해 73년말 「핵무기 개발계획 보고서」가 작성된다. 6∼10년간에 걸쳐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투하됐던 20㎏톤급 규모의 플루토늄탄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미국의 감시와 간섭을 피하기 위해 겉으로는 미사일 개발만을 내세웠다.
그러나 74년 12월 박대통령의 핵개발 의지를 「실제상황」이라고 알아챈 미 국무부는 주한 미 대사관에 『미 정보기관에 한국의 핵능력을 평가하라고 지시했다』며 상황파악을 요구한다. 미 대사관은 국무부에 『노골적이고 강압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압력외교를 건의한다.
박대통령은 75년 5월1일 스나이더 당시 주한 미대사와의 면담에서 『미국을 못믿겠다. 자주국방을 위해서라도 미사일을 개발하겠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스나이더 대사는 부랴부랴 본국에 『미군 철수라는 의회방침을 바꿔주어야 한다』는 긴급 전문을 보낸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은 76년 1월 핵 재처리시설 포기를 미국에 시사하는 쪽으로 선회하게 된다. 박대통령은 주한 미군 철수 움직임 등 미국의 한반도 안보공약에 강한 불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당시 미 정부는 분석하고 있다. 문서 곳곳에서는 핵무기, 미사일 등 전략무기를 보유해 자주국방을 실현하겠다는 박대통령의 고집이 나타난다.
미국은 상업적 원자력 분야의 협력은 물론 차관제공 중단 등으로 한국을 위협하고 한국에의 기술제공 국가로 예상되는 프랑스 캐나다 등에도 압박을 가하는 강고한 입장을 취했다. 92∼94년 북한 핵문제에 대처하는 미국의 입체적 압력·설득 외교가 당시 한국에 먼저 적용됐음을 알 수 있다.<워싱턴=신재민 특파원>워싱턴=신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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