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가 춤을 추면서 전세계 증권시장이 들먹거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의회에서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는 한마디를 던졌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은 섹스 스캔들로 탄핵위기에 몰려 자기 한몸 추스르기도 벅찬 클린턴이 아니라 바로 그린스펀의장이다. 올해 72세인 그의 판단에 따라서 우리나라의 환율도 들먹일 판이니 정말 파워맨이라 할 만하다.■그린스펀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월스트리트저널을 읽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이 신문에 난 각종 데이터를 토대로 그의 머리가 회전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없는 호황을 지키는 파수꾼 한국은행총재 집무실의 3분의 1도 안되는 방에서 일하는 그린스펀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그것은 통화수급의 최종결정자로서 대통령이나 의회의 정치적 압력에 굴하지 않는 독립성에 힘입은 바가 크다.
■미국의 중앙은행이 재무부의 시녀에서 벗어나게 된데에는 투르먼 대통령에 의해 FRB의장에 임명된 윌리엄 마틴의 기여가 크다. 원칙주의자였던 그는 대통령에게 할 말을 꼬박꼬박 하면서도 민주 공화 양당의 대통령 5명 아래서 19년을 재임했다. 케네디 대통령의 참모들은 그를 바꾸려 했지만 케네디는 『그처럼 책임감있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며 재임명했다. 또 존슨 대통령이 취임초 『항상 저금리정책을 써달라』고 요구하자 마틴 의장은 『그런 일을 할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찾으라』고 맞받아쳤지만 존슨은 그를 바꾸지 않았다.
■그린스펀의장을 임명한 것은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이었으나 부시에 의해 재신임받았고, 민주당의 클린턴대통령에 의해 2000년까지 임기가 보장됐다. 미국을 미국답게 만드는 것은 활력과 안정인데, 클린턴과 그린스펀은 이런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계산과 생각을 달리하더라도 원칙을 갖고 책임을 다하는 인재를 포용하는 리더십이 우리에게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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