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권력기관의 인권침해와 차별을 막는 인권법이 연내에 제정되고, 이 법의 규정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가 구성된다는 소식은 환영할 만하다. 법무부가 25일 발표한 인권법 시안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검찰 경찰 안기부 등 국가기관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구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불법체포 감금 고문 협박 등 인권침해를 하지 못하도록 교육·홍보하고, 제도를 개선하며, 침해행위가 있을 때는 조사·구제활동을 통해 원상회복에 노력한다는 것이다.천부(天賦)인권설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 그런데도 국가의 법 집행과정에서 인권이 침해당하는 사례가 너무 많아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세계 40여개국은 인권기구를 두어 개개인의 인권보호에 노력하고 있다. 유엔 인권위원회도 78년부터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을 권고해 왔다.
법무부는 이같은 추세에 맞추어 인권위원회에 감사원 직무감사도 받지 않는 독립적인 위상을 부여하고, 인권위 활동에 협조하지 않는 국가기관과 개인에게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학계와 재야 법조계를 중심으로 몇가지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인권위를 독립법인으로 한다면서 위원 임명권을 법무부와 대통령에게 맡긴 것은 기능면에서 의문을 갖게 한다.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기구에 민간의 참여를 확실하게 보장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인권위의 권한도 더 강화되어야 한다. 강제수사권이나 시정명령권 없이 시정권고나 고발만으로 그친다면 현재의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정도의 기능밖에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법 제정과 기구 신설을 너무 서두른다는 느낌을 준다. 법무부는 25일 시안을 내놓으면서 공청회와 입법예고를 통해 여론을 수렴한 후 10월중 정기국회에 상정하고, 세계인권선언 50주년 기념일인 12월10일을 기해 법 제정 공포식을 거행하며, 내년 상반기중 인권위를 출범시키겠다는 일정표를 제시했다.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낸 시안을 놓고 광범위하게 의견을 수렴하려면 이 일정은 너무 촉박하다. 인권선언 기념일에 맞출 필요 없이 충분히 각계 의견을 들어서 진정으로 국민이 주인이 되고, 주인으로서 대접받도록 하는 법과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수사와 교정행정, 재판 등과 관련한 국가기관의 법 집행 관행은 물론이고, 기업과 단체들의 업무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반인권적 요소는 없는지 현행법 체계를 일제히 정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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