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中企 80%이상 “지원 全無”/“수출환어음 매입·무역금융” 등/말뿐이 아닌 실감나는 행정을「수출환어음 매입활성화」(6월26일), 「외환수수료 인하」(8월19일), 「수출용원자재 신용장(L/C) 발급활성화」(4월23일), 「무역금융지원 원활화」(8월19일)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대통령의 독촉에 못이겨 최근 정부가 내놓은 수출대책들이다.
속내 모르는 사람들이야 『이제 수출중소기업들은 숨통이 트였구나』라고 여기겠지만 시화공단의 배터리 제조업체인 D전자 M사장(52)에게는 한마디로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M사장은 『아예 얘기나 꺼내지 않았으면 밉지나 않을 것』이라고 분통을 떠뜨렸다. 지난해 미국, 유럽시장으로 500만달러의 배터리를 수출한 M사장은 24일 새벽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불안속에 눈을 떴다. 『오늘은 어딜 찾아가야 돈을 빌릴 수 있을까』 이날까지 1억원의 원자재 구입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애써 수주한 물량이 물거품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더욱 조급해진다.
어둠이 걷혀가는 오전 7시, 회사에 도착한 M사장의 입에서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지난해 새로 도입한 제조설비들이 마냥 놀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대충 아침업무를 정리하고 오전 9시30분, 거래은행이 문을 열자마자 지점장을 찾아갔다. 『지점장님, 오더까지 받은 확실한 거래입니다. 원자재만 확보하면 곧바로 수출이 되고 돈이 들어옵니다』 1년넘게 안면을 트고 지낸 지점장도 애처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정은 알겠지만 어쩔수 없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수출중소기업 보증을 최우선으로 처리한다」고 발표한 수출보험공사로 연락을 했다.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 담보가 없으면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오후 3시, 허탈한 심정으로 마른 담배를 피워대고 있는데 미국 바이어에게서 연락이 왔다. 『환율도 많이 내렸는데 수출단가를 내리지 않으면 거래를 끊겠다』며 반(半)협박으로 나왔다.
『중소업체는 금융기간에 치이고, 바이어들에게 협박당하는데 공무원들은 「말따로 손따로」정책이나 내놓고 있다』 M사장은 정부의 수출대책에 대해 『높은분(대통령)이 수출을 늘리라고 하니까 밑에 사람들은 완전히 언론플레이만 하고 있다』고 흥분했다.
의료장비 수출업체인 J사의 K사장(47)도 수출대책을 『뭘 모르는 공무원들의 생색내기』로 치부해버렸다. K사장은 11월중순 독일에서 열리는 「메디카 98 의료기전시회」에 정부지원을 요청했지만 보기좋게 거절당했다. K사장은 『3년동안 의료기전시회에 참가하고 있지만 정부지원을 못받는 기업은 한국밖에 없다. 「대만 중소기업을 본받으라」는 말대신 대만「정부」가 중소기업을 어떻게 지원하는지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K사장에 따르면 대만정부는 국제전시회에 참가하는 수출중소기업에게는 전시장 무상임대, 무상통역, 캐털로그 무료제작 등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수출전선의 개미군단이 무너지고 있다. 정부대책을 믿지못하는 것은 M사장과 K사장만이 아니다. 기협중앙회가 전국 187개 수출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결과는 「수출입국」을 외치는 정부대책이 얼마나 안이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출지원책중 「조금이라도 혜택을 입었다」고 응답한 업체는 「외환수수료·환가료 인하」(18.2%), 「수출환어음 매입원활화」(15.5%), 「무역금융 지원원활화」(13.4%), 「수출용 원자재 L/C발급 원활화」(13.4%) 등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망망대해 고도(孤島)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같다』 24일 저녁 허탈한 속을 소주로 달래며 M사장이 되뇌인 푸념이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채 표류중인 수출중소기업을 구조할 배는 언제쯤 나타날 것인가.<조철환 기자>조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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