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문화에 위축돼 가는 방랑아들의 예술과 좌절/가슴저미는 애환의 무대/김명곤이 쓰고 연출·주연 ‘유랑의노래’ 내달 3일까지『삶의 황혼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늘 눈물이 난다. 그처럼 없어진 것들은 애틋하고 신비하기까지 하다』
김명곤씨는 그렇다. 영화 「서편제」에서 장안의 스타 신파극배우로 변신한 옛 소리꾼을 술집서 패대기치고 말더니, 이제 연극 「유랑의 노래」(26일∼10월3일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서커스무대에는 차마 설 수 없다는 남사당으로 나온다. 그가 직접 쓰고 연출하고 주연까지 맡은 작품이다. 시나리오도 벌써 완성돼 있는, 김씨의 영화감독 데뷔예정작이기도 하다.
「유랑의 노래」는 일제강점기 꼭두쇠 봉추산(김명곤)의 삶을 중심으로 남사당패의 애환을 가슴 저미도록 그려간다. 주인공 봉추산은 대금명인 전추산의 이름에서 따왔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가슴 아픈 첫 사랑, 서구문화에 위축되어 가는 남사당의 좌절, 살인과 피신생활등 전통사회의 방랑아들의 삶과 예술이 무대 위에 응축돼 펼쳐진다.
『대학시절 우연히 인간문화재의 무용공연을 본 뒤 술자리에 어울렸다가 여관방에서 남사당시절 이야기를 들었고, 그의 진한 외로움에 눈물을 흘렸다』. 김명곤씨는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을 이렇게 밝힌다. 그는 『남사당은 전문성을 가졌고 동시에 자유분방하면서 즉흥적인 공연과 삶을 추구했다. 그런 점에서 시대를 떠나 어느 예술가보다 현대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덧붙인다. 남사당은 조선시대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며 노래와 춤, 그리고 온갖 묘기를 파는 사내를 일컫는다. 남사당패에 여자가 끼게 된 것은 1900년 이후의 일이다.
그는 이 작품을 위해 대학로 충무로에서 함께 밥술을 뜨던 연기자, 스태프를 죄 끌어모았다. 영화배우 방은진(유란·방초)씨는 남녀 두 역을 맡아 김명곤을 사랑한다. 이혜은(황매령)씨가 2m높이의 줄을 타다 떨어지는 장면은 영상으로 보여주는데 이씨는 혹독한 줄타기훈련을 거쳐야 했다. 전통인형을 제작하는 김남수씨, 재일동포 고규미씨는 크고 작은 인형들을 만들었다. 김대균(광대줄타기 전수조교) 박용태(꼭두각시놀음 전수자) 이봉교(땅재주 이수자)씨가 줄타기 인형놀이 탈놀이 버나돌리기 등 남사당의 전문기예를 가르쳤다. 그리고 극단 아리랑의 고동업 김기천씨, 풍물굿패 살판, 김현숙(의상) 김만중(음악)씨…. 김씨의 딸 아리와 아들 종민도 아역을 맡아 땀을 흘리며 악기를 배우고 연기를 익혔다. 이 작품에는 여섯살부터 초등학교 5학년까지 모두 7명의 아역배우가 출연한다.
출신이 비천하여 예술적 맥이 제대로 전승되지 않은 남사당패는 김씨같은 인물이 없다면 그저 잊혀질 문화유산이다. 『아마 내가 뭐에 씌운 게지』라고 김씨는 속내를 털어놓는다. 공연시간 오후 4시30분 7시30분. (02)7415332<김희원 기자>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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