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까지 나서도 은행 창구 요지부동/총력수출체제 ‘비틀’수출의 최대걸림돌은 여전히 금융이다. 대통령까지 나선 수출총력체제도 은행의 창구를 움직이는데는 역부족이다. 은행권이 자기보신에만 급급한 나머지 돈을 움켜쥐고 만 있어 국가경제의 젖줄인 수출산업이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 정부」출범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나온 수출대책의 대부분은 금융관련 대책이다. 이 사실은 수출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역할이 절대적임을 시사해주는 동시에 거꾸로 금융이 가장 큰 걸림돌임을 반증해 준다. 경제를 움직이는 두 수레바퀴(실물 금융) 가운데 금융부문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 「불구(不具)경제」인 셈이다. 수출업계는 정부당국이 쏟아내는 금융대책마다 금융현실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지원이 집중된 중소기업들은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이다. 수출신용장(LC)을 들고 신용보증기금을 찾아가면 보증한도와 수출실적 신용리스크 등을 감안 20∼30%밖에 보증을 받지 못하고 대기업의 구매승인서를 갖고 시중은행을 찾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얘기를 듣는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사장은 『환란을 겪으면서 적색이나 황색거래업체로 분류되지 않은 업체들은 드물다』면서 『틈새시장을 개척하라고 해서 개척했더니 리스크가 큰 지역이라 보증이 힘들다는 얘기앞에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금융권의 복지부동에 무기력하기는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종합상사인 B사는 최근 바이어로부터 2억달러의 선수금을 받는 조건으로 수출주문을 받고도 국내은행으로부터 보증을 받지못해 외국계은행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C사도 2억달러짜리 수출주문을 받고도 국내은행의 수입신용장개설이 늦어지는 바람에 바이어를 대만에 빼았겨야 했다. 한 관계자는 『일선 은행원들이 몸을 사리는 바람에 지난해 일주일이면 끝날 은행의 의사결정이 한달이상으로 늘어나고 있다』면서 『이 와중에 그나마 어렵게 잡은 바이어들을 경쟁국에 뺏기는 안타까운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지원대책의 허실을 지적하는 사례는 숱하다. 우선 수출용원자재수입을 위해 배정한 외화자금 지원실적은 16일 현재 21억8,000만달러. 4월부터 시행했지만 전체 53억달러가운데 절반이 넘는 31억달러는 잠만 자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의 무역금융을 허용하지않는 대신 무역어음을 활성화하겠다는 정부의 대책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조치다. 산업은행이 무역어음 할인을 위해 1조원의 자금을 풀겠다는 태세지만 회사채금리가 10∼11%수준인데 비싼 무역어음을 쓸이유가 없기 때문이다.<이재열 기자>이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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