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TV를 보니 한 남학생이 옥상에서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나왔다. 『엄마, 나 컬러팬티 사줘요. 초록색 바탕에 빨강 땡땡이무늬 있는 걸로. 흰 색팬티 입은 애는 나밖에…』해방 이후 우리가 겪은 엄청난 변화 중 하나가 남성속옷이다. 기능적인 면만 고려했던 종래의 속옷은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으나 요즘 속옷은 남에게 보여주려는 것인지 너무 다양하다.
서울 시내에는 「속옷 뷔페점」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강렬하고 도전적인 색깔의 팬티가 난무하면서 종래의 순백색 팬티는 촌사람 속옷이 돼버렸다. 디자인의 변화는 더욱 엄청나다. 여성 비키니수영복처럼 이리저리 파고 들어가 가리는 곳이 별로 없는 종류가 많다. 남성속옷을 야광 망사로 만들든, 치부를 다 보여주든 간섭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고환이 몸에 착 달라붙게 만든 팬티는 남성의학적으로 크게 잘못됐다는 사실만은 지적해야겠다.
남성이 남성다워지려면 「제대로 된」 고환이 필수적이다. 고환은 남성호르몬과 정자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고환이 제 기능을 다하려면 체온보다 3∼4도 낮은 온도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조물주는 남성에게 음낭이라는 냉장고를 만들어 몸 속보다 신선한 몸밖에 고환을 보관하게 했다. 옛날 인도에선 남성피임법으로 고환을 뜨겁게 하는 방법이 응용되기도 했다.
상당수의 패션팬티는 이런 남성의 생리를 무시한 것이다. 조물주가 시원하라고 몸 밖에 내놓은 고환을 일부러 몸쪽에 밀착시켜 따뜻하게 만든다면 얼마나 반남성적인가. 시민들은 한동안 환경호르몬이라는 용어 때문에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환경호르몬은 간단히 말해 우리 주위의 환경에 있는 물질로 체내에서 여성호르몬처럼 작용한다. 즉 환경호르몬에 노출되면 남성이 여성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패션팬티도 환경호르몬과 다를 것이 없다. 필자는 옥상의 남학생이 그렇게 바라던 것이 또 다른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대한남성과학회장·서울대의대 비뇨기과 교수>대한남성과학회장·서울대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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