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는 국민을 불편하게 하는 각종 규제를 폐지하기로 하고 4월18일 김종필(金鍾泌) 국무총리를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규제개혁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원회는 그동안 반복 수입하는 수출용원자재 요건면제신청 간소화, 건설기계 정기검사 대폭완화, 운전면허 정기적성검사 폐지 등 민생과 직결된 불편을 덜어주는 과감한 규제개혁 조치를 단행, 많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고있다.그런데 국민 대다수가 꼭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규제가 개혁의 명분에 밀려 풀렸거나 풀릴 조짐이어서 규제개혁 원칙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결혼식장에서 식사시간 외에 음식접대를 금지하려던 보건복지부 계획이 위원회의 제동으로 무산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당초 식사시간이 아닌 오후3∼5시에 하객들에게 음식물을 접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시행령」 개정안을 10월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예식장업주 등의 거센 반발을 이유로 시행시기가 몇차례(2월→5월→10월) 늦춰지더니 개정안은 마침내 「규제」라는 낙인이 찍혀 완전 유산(流産)돼버렸다.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법조항을 둬 국민 사생활의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 불편을 초래해서는 안된다』는 게 위원회의 설명이다. 복지부측은 아직도 『오후3∼5시 거행되는 결혼식의 음식물 낭비가 연간 1,312∼3,062억원에 달할 뿐 아니라 막대한 양의 쓰레기를 배출하기 때문에 시행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36개 시민·사회단체 구성된 생활개혁실천범국민협의회도 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정부가 마련한 개혁안을 정부 스스로 짓밟는 꼴』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15일부터는 다방 제과점 등 휴게음식점과 음식점 호프집 등 일반음식점에 대한 영업시간 제한이 풀렸다. 이들 업종은 이날부터 밤샘영업이 가능해졌다. 다행히 단란주점과 룸살롱·나이트클럽·카바레 등 유흥주점의 심야영업 규제해제는 내년 2월말까지로 시행이 일단 보류됐다. 또 언제 해제될 지 두고볼 일이다.
위원회는 휴게음식점과 일반음식점의 심야영업 규제가 사업자와 이용자 모두에게 불편을 초래하고 단속공무원의 비리를 조장하는 등 부작용이 많아 해제했다고 설명한다. 단속의 실효성이 없다면 더욱 강화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반사회적인 퇴폐·향락업소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일까지 규제로 몰아 해제한다면 국민들이 이해하겠는가.
묘지면적을 축소하고 시한부 매장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매장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도 지난해 9월 입법예고된 뒤 1년이 되도록 잠자고 있다. 뿌리깊은 매장선호 풍습으로 묘지면적이 급격히 늘어가는 판에 이 역시 규제라는 이유만으로 덫에 걸려 있다. 이 사안은 복지부 자체 규제개혁위원회가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누구를 위해 규제를 해제하려는 건지 알 수 가 없다.
교통신호등은 왜 있는가. 운전자들을 규제하기 위해 설치돼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대다수의 운전자들이 신호등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로마다 신호등이 설치돼 있는 것이다. 공익에 부합한다면 나아가 규제를 창조하는 것도 정부가 할 일이다. 공익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계층의 이익을 대변해 행해지는 규제해제가 만에 하나라도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엄정히 규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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