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자동차 1,000만대/70년대 고속道 1일 생활권/80년대 ‘마이카시대’ 활짝/90년대 도시주행 20㎞대/항공도 국내외 거미줄 노선건국당시 정부 교통정책의 기본은 자동차의 수송력 증대에 맞춰졌다. 수송수단이 워낙 빈약했던 때문이었다. 그러나 80년대이후 자동차 대중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정부정책은 승용차 증가억제를 통한 대중교통수단 육성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48년 건국당시 전국의 자동차대수는 통털어 1만2,971대. 98년6월말 현재는 총 1,039만4,230대로 무려 801배나 증가했다. 또 당시에는 화물차가 9,236대로 승용차(3,012대)의 3배를 넘었으나 현재는 화물차(207만1,853대)가 승용차 (756만3,029대)의 3분의 1 수준으로 구성비가 완전히 역전됐다.
차종별로 보면 해방당시에는 시내버스가 54개 업체에 97대가 운행되고 있었으나 지금은 1,260개업체에 5만5,711대이다. 버스운임도 8전에서 500원으로 화폐가치를 따지지않은 단순 액면가로는 6,250배가 올랐다.
이 기간 중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역시 교통의 주력이 철도에서 자동차로 바뀐 것이다.
해방 당시 국철은 총연장 6,362㎞에서 올해 6,580㎞로 불과 3% 늘어나는데 그쳤으나 국도는 5,263㎞에서 올해 1만2,459㎞로 2.37배, 지방도의 경우 9,997㎞에서 3만4,332㎞로 3.43배가 늘었다. 특히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시행으로 도시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경인고속도로를 필두로 고속도로망이 구축되기 시작한 60년대가 분기점이 됐다. 61년 수송분담률은 철도가 53%였으나 70년에는 도로가 66%로 철도를 압도했다. 특히 오랫동안 대도시교통의 한축을 담당했던 전차는 66년11월 퇴장, 역사의 뒷전으로 사라졌다.
70년대 들어 경부고속도로 등이 전국 수송망의 중추로 등장하면서 이후 도로수송은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이 시기는 국내에서 자동차가 대량생산된 시점이기도 하다. 73년에는 비사업용 차량대수가 사업용차량대수를 추월, 승용차시대를 예고했다. 전국이 1일 생활권에 접어들면서 철도는 장거리 구간에서도 자동차와 고속버스 등에 밀려 경쟁력을 잃어갔고 필연적으로 부실화의 길을 걷게됐다. 그러나 인구집중과 과밀화, 자동차증가 등이 맞물리면서 대도시 교통난이 현실적인 문제로 떠오르자 획기적인 도시교통정책수단으로 지하철건설정책이 도입돼 마침내 74년 지하철 1호선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80년대에는 자가용 승용차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전국 자동차대수가 80년 52만대에서 89년 266만대로 5배이상 늘어났고 자가용승용차도 이 시기에 100만대를 돌파, 본격적인 「마이카」시대가 열렸다. 지하철 2·3·4호선이 잇따라 건설됐으나 도시 교통체증은 이미 손쓸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무작정 승용차 선호풍조가 일면서 효율적인 도시수송분담구조도 무너졌다. 버스수송수요가 갈수록 감소, 82년 65.5%이던 버스 수송분담률이 89년에는 47.3%까지 떨어졌다.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도 마찬가지 상황이 됐다. 이로인해 교통영향평가제, 교통유발부담금제 등 당시만해도 생소한 용어들이 등장했다.
90년대 들어서는 마침내 자동차의 도시 주행속도가 시속 20㎞대로 떨어졌다. 91년 서울시내 평균 주행속도는 21.6㎞로 일부구간이나 시간대에서는 걷는 것이 차라리 나은 상황이 빚어졌다. 97년에는 처음으로 지하철수송분담률(30.8%)이 시내버스 수송분담률(29.4%)을 넘어섰으나 여전히 높은 승용차 분담률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 경부고속철도의 건설로 반세기동안 침체돼있던 철도분야에 새로운 활력이 생기면서 전반적인 수송구조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육상교통과는 별도로 항공부문도 지난 50년간 엄청나게 규모가 커졌다. 60년 경비행기 4대를 포함, 모두 7대에 불과했던 민간항공기가 현재 대한항공 110대, 아시아나항공 45대 등 총 155대로 20배이상 늘어났다. 국내선 항공수송객수는 63년 9만4,036명에 불과하던 것이 97년 2,563만9,000명으로, 국제선의 경우 63년 4만8,813명에서 97년 1,659만8,000명으로 급격한 수직상승 추세를 보였다. 현재 우리 국적기들은 국제 항공노선의 경우 33개국 82개도시 116개노선에 주 511회 운항하고 있으며, 국내선은 16개도시 32개노선에 하루 221회 운항, 거미줄같은 항로를 형성하고 있다.<조재우 기자>조재우>
◎통신/전화가입 2,000만명 돌파/집한채값 백색전화로 출발/이젠 거리마다 휴대폰 열풍/PC통신·인터넷 또다른 혁명/이용 문화는 아직 후진국 수준
국내 통신역사는 건국 50주년을 맞는 올해,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가 통신주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해가 바로 50년전인 1948년이기 때문이다. 일제치하의 암흑기, 45년 해방후에 3년간의 미군정 통신운영감독기간을 거쳐 그해 9월 미군으로부터 통신운영권을 이관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으로 얼룩졌던 50년대는 통신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일반인을 위한 전화보급이 56년부터 시작됐지만 전화가입자수는 3만8,453명에 불과했다.
가격 또한 서울의 변두리 집한 채값과 맞먹을 정도로 고가여서 동네마다 잘사는 집에 한 두대가 있을 뿐이었다.
당시 전화는 「백색전화」로 불렸다. 백색전화는 개인이 전화를 사고 팔 수도 있어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됐다. 이 때문에 당시 체신부는 동대문운동장에서 수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가입신청권을 추첨하기도 했다.
백색전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청색전화」. 정부는 70년 9월부터 다른 사람에게 팔 수없는 청색전화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국내에 전화보급이 본격화한 것은 이러한 청색전화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다. 66년께 27만여명이던 가입자는 76년 127만여명으로 급증했다.
88년에는 전화가입자 1,000만명시대를 돌파했고 10년만인 지난해 2,000만명을 넘어서며 1가구 2전화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이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전화보급률면에서 세계 10위권에 진입하는 통신선진국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유선전화의 오랜역사와는 달리 최근 필수통신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동통신역사는 15년여에 불과하다. 휴대폰(당시는 카폰)은 76년 첫 선을 보였다. 당시 이용자는 불과 284명.
하지만 당시의 휴대폰은 단말기가격만 100만원이 넘고 가입비와 보증금을 합치면 200만원을 웃도는 엄청난 고가(高價)제품이었다.
휴대폰가입자수는 사업개시 10년이 넘게 큰 변화가 없었다. 88년에 고작 2만여명, 90년에 8만명, 93년에 47만명에 불과했다. 94년들어 96만명을 기록했고 95년에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 164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하지만 96년부터 휴대폰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지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1년사이에 200만여명이 가입, 휴대폰이용자가 318만명으로 늘었다.
해가 바뀐 97년은 그야말로 「휴대폰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휴대폰대중화를 알리는 한 해였다. 특히 97년 10월께 등장한 개인휴대통신(PCS)은 일반인들에게 「나도 휴대폰을 가질 수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휴대폰대중화에 불을 지피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97년말께 무려 682만여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런 97년의 폭증세도 98년들어 무색해졌다. 올해부터는 매달 가입자수 100만단위가 바뀔 정도의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휴대폰 5개사의 가격인하내리기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대학생및 직장초년병을 중심으로 한 20, 30대 젊은 층이 새로운 신규고객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청바지 뒷주머니에 휴대폰을 꽂고 다니는 새로운 패션이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다. 이러한 열풍덕에 1월에 700만명을 돌파했고 3월에는 800만명, 4월에는 900만명을 기록했다. 휴대폰가입자는 결국 7월중순께 1,000만명시대를 돌파, 이동전화의 대중화시대를 활짝 열었다. 4,000만인구 가운데 청소년층과 노인층을 제외한 경제인구를 기준할 때 「1인 1휴대폰」시대가 열린 셈이다.
이러한 유·무선통신외에 90년대에는 PC통신과 인터넷이란 데이터통신이 새로운 통신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5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데이터통신상품은 유선전화가 감소세로 돌아선 상황에서도 고속성장세를 구가, 또한번의 전화혁명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건국 50년이 지난 지금, 통신선진화를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통신이용문화는 아직도 후진국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퉁명스러운 전화이용습관은 여전하고 장난전화와 폭력전화가 끊이지 않고있다.
선진국수준의 통신이용보급에 걸맞게 자기몸에 맞는 알뜰형 통신상품을 골라 이용하는 수준높은 통신이용문화를 시급히 정착시켜야할 때다.<김광일 기자>김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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