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은 단독국회로 가고, 야당은 의원직사퇴 결의와 거리 투쟁으로 나서는 정국은 지금 우리가 어느 시대에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구습의 전형이다. 여야는 장내와 장외에서 각각 격렬하게 상대방을 성토하고 있다. 정치가 실종된 심각한 무기력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이 단독으로 국회를 연다면 정국은 더욱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한다.단독국회는 여권 자신에 더 큰 상처를 주게 될 것이다. 말도 많았던 야당의원들의 영입으로 여대(與大)를 만들자마자 단독국회소집이라는 파행으로 첫 선을 보인다면 과반의석의 명분이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정국대치의 원인이 무리한 여대만들기와 편파사정 시비에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 논란이 아직 해소되지 못한 상태인데, 여권만의 국회운영은 성급하고 오만한 발상이다.
여권은 「사정은 사정이고, 국회는 국회」라고 주장한다. 말은 맞다. 사정에 대한 시비가 많다고 해서 사정자체를 주저 앉혀서는 안된다. 기본적으로 비리 수사와 정기국회의 책무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예산심의와 국정감사, 개혁입법 등 정기국회가 처리해야 할 일들은 의원 본연의 업무다. 의원들에게는 도덕적 법적 의무다. 여야의 싸움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국회를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국정에 최종책임을 가진 집권여당의 정치력이 끝내 이런 식으로, 이 정도밖에 발휘되지 못한다면 암담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정치권이 사정의 대상으로 돼 있는 마당에 정치력의 발휘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측면은 이해한다. 특히 현재의 여야 쟁투가 정권의 자존심과 야당의 존립이 맞부딪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정치집단으로서의 여권이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힘대결로만 일관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집권여당이 야당과 달라야 하는 책임감이자, 어려움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집권당이 힘을 의식하고 이를 쓰기 시작하면 야당은 반발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정치의 생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여권이 잘 알 것이다.
의석과 힘을 가진 여권의 단독국회와 이에 극렬저항하는 야당의 가두투쟁은 IMF체제의 고통에 억눌린 국민들에게 또하나의 고통을 얹어주는 시대착오적 행태다. 여권이 단독국회소집을 내주중반으로 미루어 시간을 벌어놓기로 한 결정은 일단 다행스럽다. 단독국회라는 볼썽사납고 불행한 장면을 국민이 보지 않도록 해주기 바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