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총리는 5년여에 걸친 자신의 총리직 재임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결단이 83년 KAL기 사건 때의 일이었다고 회고한바 있다. 96년 9월말 펴낸 그의 자서전 「대지유정(大地有情)전후정치 50년을 말한다」에서 나카소네 전총리는 일본의 방공망이 잡은 소련의 시베리아공군기지와 KAL기를 격추시킨 조종사와의 교신내용을 증거로 내놓기로 한 결정이 재임중 가장 자신을 괴롭혔다고 술회했다.KAL기 사건의 물증이기도 한 이 「교신기록」은 곧 일본이 소련의 시베리아 극동기지를 샅샅이 살피고 있다는 고해(告解)였기 때문이다. 「대통령형 총리」라는 평가를 받은 거물총리도 일본의 전략방공망 노출사태가 못내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비무장 여객기를 격추시킨 진실을 공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명분을 세웠지만 실은 미국의 권유때문이었음을 털어놓고 있다.
일본의 시각으로는 미국도 그만한 정도의 정보는 갖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극동방공망 보호를 위해 일본더러 대신 「총대」를 메도록 강요하는 현실이 나카소네로서는 감내하기 힘들었다. 격추사실을 부인하며 일주일간이나 시치미를 떼고 있던 소련이 일본자위대가 수집한 50분간의 교신기록을 들이대자 범행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으로 소련은 이를 계기로 일본자위대의 시베리아기지 감시 방공망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북한이 지난달 발사한 로켓 추진체 일부가 알래스카 부근에 떨어졌다고 일본 NHK방송이 미국관리의 말을 인용, 보도하고 있다. 로켓추진체 일부가 6,000㎞까지 날아갔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제 미국도 북한미사일 사정권에 있음을 의미한다. 아직 정확도등에서 당장 위협이 안된다고 느긋해할 지 몰라도 언제 발등에 불이 튈지 모르는 일이다.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개발규제를 서두르는 일이나 요격망구비 움직임 등을 우리는 언제까지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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