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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의 두얼굴(문민정부 5년: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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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의 두얼굴(문민정부 5년:55)

입력
1998.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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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언 활개 꼴 못본다” 수사 특명/이충범 비서관 김덕안기부장 찾아가 “자료 달라”/검찰 “보안새면 사표각오” 다짐받고 극비수사/“사정 이제그만” 건의에 YS “씰데없는 소리” 역정문민정부 초기사정의 「표적(標的)」과 「성역(聖域)」은 무엇이었을까.

한 민주계 인사의 설명. 『당시 도처에 깔려 있는 3·5·6공의 「개발세력」들은 우리와는 너무 다른 사람들이었어요. 비리를 저지른 인사들이 단죄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우리가 산에 다닐 때 집권하면 중국의 「측천무후(則天武后)」가 했던 것처럼 (구 권력층을) 바늘로 찔러 참형해도 시원치 않을 거라는 우스갯 소리는 했지요. 하지만 표적수사… 우린 그런 것 안했습니다』

그러나 이 인사의 말과는 달리 정권핵심부에서 과거정권의 실력자를 대상으로 사정준비를 한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문민정부 출범 한달이 채 안된 93년 3월 중순. 청와대 민정수석실 이충범(李忠範·현 변호사) 비서관은 김덕(金悳·현 한나라당의원) 안기부장을 은밀히 찾아갔다. 박철언(朴哲彦·현 자민련의원)씨의 비리를 기록한「안기부 파일」을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씨는 아무런 성과없이 발길을 돌려야했다.

김안기부장의 설명. 『이비서관이 와서 자료를 요청했지만 사실 줄 자료가 없었어요. 밑에서 내가 모르는 어떤 자료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아는 한 아무것도 없었죠. 이비서관에게는 「그런 짓 하지 마라. 자칫 정치보복 인상을 주면 대통령에게 누를 끼칠 수 있다」고 달래서 돌려보냈지요』

그러나 「6공의 황태자」였던 박철언씨에 대한 수사는 이비서관의 주도로 서울지검에서 착수된다. 소위 「LP(Little Prince)수사」였다. 이비서관은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의 중학교 선배로 92년 대선당시 「영소사이어티」그룹을 이끌며 김대통령을 도운 인물. 이비서관의 진술. 『박씨가 누굽니까. 6공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사람 아닙니까. 새정권이 들어섰는데도 구시대 권력 핵심이 활개치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어요』

YS의 최측근 K씨의 설명. 『그사람이 우리를 얼마나 괴롭혔습니까. 사사건건 마지막까지 발목을 잡고… 대통령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기에 박씨를 용서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은밀하게 내려간 청와대 특명수사는 서울지검 특수1부에서 맡았다. 당시 조용국(趙鏞國·현 변호사) 특수1부장의 회고. 『검찰 라인을 통해 자료를 받았는데 10여페이지 분량의 상당히 구체적인 자료였어요. 누가 어디서 무슨 건으로 얼마를 주었다는 제보와 월계수회와 관련된 60여개 계좌 번호등이었습니다. 검사들에게 「보안이 새면 사표쓸 각오하라」고 다짐을 받은 뒤 극비리에 조사를 시작했지요. 기업인을 비롯해 월계수회와 관련된 많은 사람을 조사했는데 의심을 받지 않기위해 낮에만 소환했어요』

조부장은 당시 특수부 중견검사였던 K검사에게 수사를 맡기려했지만 처음부터 반발에 부딪쳤다. K검사가 『한쪽은 승자, 한쪽은 패자인데 승자쪽에서 던진 자료로 패자를 죽이는 수사는 할 수 없다』며 버틴 것. 결국 LP수사에서 K검사는 빠지고 또다른 K검사를 거쳐 양모검사(현 변호사)가 주임검사로 지정됐다.

양검사의 회고. 『당시 자료는 안기부와 국세청 경찰등의 자료를 종합한 것이었어요. 입출금 총액을 합치면 200억정도 됐는데 계좌도 대부분 일회성 단말계좌였어요. 샅샅이 뒤졌지만 대부분 허탕이었어요. 박씨 돈으로 확인된 것이 4,000만원정도 됐는데 그것도 정치자금이었어요. 물론 우리가 확인한 것은 넘어온 내사자료에 국한된 것이었기때문에 박씨의 정치자금 규모나 재산형성과정을 모두 스크린 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수사는 박의원이 슬롯머신 사건으로 구속된 뒤에도 계속됐다. 박의원이 수뢰사실을 부인하며 법정투쟁을 벌이자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던 검찰은 혹시 무죄가 선고될 것에 대비, 보다 확실한 「건수」를 잡기위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것. 그러다 7월께 라이프주택 노조가 월계수회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던 조정민(趙庭民) 부회장의 비자금 조성사실을 검찰에 진정하면서 LP수사를 맡고있던 양검사에게 이 사건이 배당됐다. 그러나 조씨의 정치인 로비의혹 수사는 중간에서 흐지부지되고 만다. 양검사의 설명.『월계수회 소속 의원들에게 총선전 1,000만∼수천만원이 지원된 사실은 확인했어요. 그러나 당시만 해도 대가성이 없는 정치자금으로 의원들을 처벌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박씨에게 돈이 가장 많이 간 것으로 기억되지만 그 액수는 「반장」(5,000만원)을 넘지 않았어요』

그해 11월5일 박의원이 슬롯머신 사건 1심재판에서 징역2년의 유죄판결을 받으면서 비로소 LP수사는 막을 내렸다.

한편 김대통령의 「성역없는 사정」 지시가 떨어졌지만 청와대 민정수석팀과 검찰은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김영수(金榮秀) 청와대민정수석의 회고.『당시 사정대상은 구정권에서 핵심요직에 있던 사람들인데 누가 자신의 목에 칼을 댈 자료를 남겨놨겠어요. 나 같아도 안남겨뒀을 거에요. 완전히 빈손이었죠』

검찰도 사정은 비슷했다. 경제통으로 알려진 특수부 중견검사의 회고. 『당시 검찰수뇌부도 상당히 급했던 것 같아요. 어느날 갑자기 위에서 불러 올라갔더니 「문제가 있는 인물을 추려오라」고 하더군요. 온갖 파일을 뒤져 일단 30여명의 명단을 만들어 가져갔지요. 대검 중수부와 서울지검 특수부는 이 자료를 근거로 사실확인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청와대는 일단 토착비리 사정부터 착수했다. 사정1비서관실 직원 11명이 일주일간 암행감찰을 하면서 안기부 감사원 경찰 검찰등의 자료를 모았다. 이충범 변호사의 설명. 『족히 5백명이상의 수사대상자 명단이 검찰에 내려갔어요. 당시 토호들이 「소나기는 피해가야한다」며 몸을 사린다는 소리가 들려 「6개월마다 소나기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죠』

실상은 어땠을까. 지방에서 토호수사를 담당한 검사의 기억. 『당시 청와대에서는 군(郡)단위로 2명씩 비리인사를 찍어서 내려보냈어요. 「누구 누구는 부동산투기등 축재혐의로 지탄을 받고 있는 자임」등 간략한 첩보였는데 엉터리 정보도 상당수였죠. 알아보니 자료는 안기부에서 작성한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자기들에게 밉보인 사람들을 비리인사로 보고한 것이 많았었어요. 청와대에서는 이 자료를 여과없이 검찰에 내려보낸 거죠』

이 와중에 상층부와의 의견조율없이 검찰이 독자적인 수사를 했다가 머쓱해진 경우도 있었다. 당시 대검 중수부와 서울지검 특수부에서는 은행장 2명의 개인비리를 내사중이었다.

서울지검 특수부는 민주계와 각별한 국책은행의 K행장이 대출과 관련 1억8,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포착했지만 결국 덮어버리고 만다. 당시 특수부 관계자의 기억.『나중에 알고보니 K행장의 비리는 감사원에서 이미 스크린됐지만 청와대의 지시로 덮었던 것이더군요.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계좌까지 다 뒤져 물증을 확보했지요. 물론 이번에도 「NO」사인이 내려왔어요. 「성층권」의 뜻을 모르고 혼자 뛰다 망신당한 경우였죠』

결국 K행장은 구속을 면하고 민자당 지구당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형식으로 현직에서 물러났다.

YS의 사정의지는 확고했다. 슬롯머신 사건과 군인사비리등 거센 사정태풍이 지나간 93년 9월. 모 청와대 비서관이 대통령공관에 올라가 YS와 독대했다.

비서관=연말이면 국영기업체 감사도 끝나는데 연초에는 덕담이나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뒤지면 뒤질수록 구린내가 나는 게 사정입니다. 이제 생업에 전념하고 화합의 정신으로 열심히 깨끗이 살자고 제안하시죠. 예전 일은 불문에 부치겠지만 앞으로의 비리는 용서않겠다고 말씀하시고 사정을 정리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김대통령=(노한 표정으로) 씰데없는 소리… 사정은 5년내내 할끼다.<이태희 기자>

◎YS와 골프/모기업체 사장 아들 새벽 골프장 1억 도난에 자극/결벽증 가까운 골프금지령/숱한 공직자들 옷벗게

YS의 「골프금지령」은 공직기강 확립을 위해 내놓은 「카드」. 골프금지령에는 다소 「결벽증」적인 YS의 개혁관이 집약돼 있다. 실제 문민정부 5년동안 골프를 치다 암행감찰에 걸려 많은 공직자들이 옷을 벗었다.

YS의 핵심측근인 K씨가 말하는 골프금지령에 얽힌 사연. 『YS가 3당합당을 한 뒤 합당 주역들끼리 골프회동을 했어요. 골프장에 갔더니 젊은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는데 YS가 주변에 물어보니 다 알만한 집안의 자제들이었어요. 또 분명히 근무시간중인데도 공무원들이 와서 인사를 하니 눈살을 찌푸릴 만했지요. 결정적인 것은 당시 모기업체 사장의 아들이 새벽에 골프를 치러 가다가 차 트렁크 속에 들어있던 1억원을 날치기 당한 사건이었어요. YS는 사건의 내막을 전해듣고 기가막혀 했죠.「있는 집」 자식들이 돈 싸들고 내기골프나 하러다니고 공직자들은 일과중에 골프접대나 받고 다닌다면서 말이죠… 그래서 골프를 안치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물론 본인이 골프를 잘 치지 못하기도 했지만 골프에 투자하는 시간을 아까워했어요』

이어지는 K씨의 설명. 『사실 「가진 자에게 고통을 주겠다」는 발언도 의미가 곡해된 것이었어요. YS의 속내는 한가하게 골프나 치고있는 「놀고먹는」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겠다는 뜻이었는데 원래 눌변인데다 중간에 여과장치가 없었던거죠』

정무수석비서관등을 역임한 주돈식(朱燉植)씨가 「문민정부 1천2백일」이라는 저서에서 밝힌 일화 한토막. YS는 취임 며칠후 청와대 구내를 산책하다 청와대 구내에 있는 골프연습장에서 공을 몇 개 쳐 보았다. 그런데 조금후 군복을 입은 군인이 숨을 헐떡이며 공을 들고 달려왔다. 수행원들의 설명에 따르면 공을 치면 외곽경비를 하고 있던 군인들이 주어 오도록 되어있다는 것.

YS는 『군인들이 대통령이 친 공을 주으며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며 『이것은 부도덕한 일』이라며 청와대 구내 골프연습장을 폐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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