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사정이 정치권의 핵심이슈가 돼 있는 현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비리와 범죄를 다루어야 할 검찰수사가 정치적 타협의 대상인 것처럼 여겨지고 수사방향과 내용이 정치적 다툼을 초래하는 양상은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이로인해 정기국회와 국정감사가 명함도 못내밀 지경이다. 여권은 단독국회 강행의사를 공언하고 있고 야당은 장외로 나섰다. 굳이 시시비비를 따지기 이전에 이 국면은 잘못 가고 있다.사정이 정치논쟁에 휩쓸려 이를 벗어나지 못할 경우 그 사정의 결과는 보나마나다. 오히려 정치혼란만 가중시키고 정치위기를 가져다 주는 사정이라면 그것은 사정의 위기다. 사정이 제대로 되려면 독립적 검찰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 시점에서 검찰의 독립성을 다시 강조하는 뜻은 정치적으로 채색되지 않는 철저한 형평성에 대한 주문이다. 형평성이 의문시될 때 사정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다. 작금의 여야대립은 바로 이 대목에 대한 견해차이다. 그리고 이 견해차이가 의정마비와 정국의 위기를 생산하고 있다.
김대중대통령은 어제 『사정은 검찰에 의해 여야차별없이 법대로 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는데, 되풀이할 필요도 없이 사정은 당연히 그런 것이어야 한다. 사정은 이벤트가 될 수 없는 상시적 검찰기능이며 하물며 기획사정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작금의 사정정국은 9월부터 돌입한다는 예고와 함께 시작돼 요란스러운 야당의원 영입과 병행되면서 개혁정신의 본질을 흐려 버린 느낌이다. 사정이 정치적 시비에 휘말려 버린 것은 야당의 집요한 정치공세 탓일 수도 있으나 드러난 정황을 보는 여론의 시선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국세청모금사건이 해당의원의 자진출두로 매듭을 풀었다고는 하나 공교롭게도 소환대상은 여측이 가장 껄끄러워 하는 야당인사가 대부분이다. 동일사안에 거론되던 여권인사들에 대해서는 혐의가 묵살되거나 적극적 입증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억대수수 혐의를 받은 자민련 중진의원의 경우 대가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이는 검찰이 적용하는 대가성의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여권은 사정에 관한 타협을 배제한다고 밝히고 있다. 국회도 단독운영할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한다. 사정으로 정국을 돌파하고 파행정국을 감수하겠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그 과정의 소모적 혼란과 파국의 부담까지도 정당화할 수 있는, 철저한 사정이 아니고는 안될 것이다. 여야의 차별이 없고 기준과 원칙이 엄정한 사정일 때 야당도 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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