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쌀을 먹고, 여름엔 보리를 먹어야 보양(保養)이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의원 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가는 아들에게 묻는다. 『그 철에 나는 곡식이기 때문이지요』 『적어도 의원의 대답은 그래선 아니돼. 엄동에 쌀밥을 권하는 것은 천지가 음기(陰氣)에 든 겨울에 따가운 땡볕 속에 영근 쌀에서 양기를 취하여 음양 조화를 지니려는 것이며, 한여름에는 엄동의 눈밭에서 자란 보리의 냉기를 취하여 모자라는 음기를 보하는 것이야』몇해전 베스트셀러가 됐던 이은성의 교양소설 「동의보감」은 우리의 전통적 식생활 습관을 이렇게 의학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음양의 조화는 동양철학·의학을 관통하는 하나의 핵심적 원리다. 지금은 보리농사가 줄어 보리밭을 구경하기도 어렵지만, 가곡 「보리밭」과 한흑구의 수필로 예찬되기도 했던 예전의 「보리」는 늦가을부터 봄까지 우리 농촌을 뒤덮고 있는 정겨운 풍경이었다.
올여름 남북을 오르내린 집중폭우가 일조량 부족을 걱정하게 만들더니,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한 가운데 한낮에는 초가을의 노염(老炎)이 쌀농사를 돕고 있어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천지 간에 흐르는 기운이 땅 위의 생명들을 위해 뒤늦게 균형을 이뤄주는 듯 하다. 농림부에 따르면 벼 이삭이 여물어 가는 등숙기(登熟期·8월중순∼9월말)의 고온청명한 날씨는 벼농사에 더 없이 좋고, 일조량이 많을수록 수확량도 많다고 한다.
요즘 하루 땡볕이 쪼이면 쌀 12만섬이 증산되어 쌀 작황도 평년작인 3,400만섬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늦더위는 과일에도 단맛을 스미게 하여 추석쯤에는 맛있는 햇과일을 안정된 값에 먹게 될 것이라고 한다. 늦더위가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우리는 올해 들어 특히 엘니뇨현상이라는 기상이변에 시달리고 있다. 올 겨울은 또 라니냐현상으로 꽤 추울 것이라니, 늦더위 속에서도 미리 대비하고 마음 쓸 일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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