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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박두진 시인의 삶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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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박두진 시인의 삶과 문학

입력
1998.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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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의 고고함 지녔던 마지막 청록파/산·해·수석 등 자연속에서 神·인간 추구/불의의 시대땐 비판정신 견지 詩壇 거목혜산(兮山) 박두진(朴斗鎭)은 현대 한국시단에 살아 있던 대표적인 예언자적 지성이었다. 평생을 일관해 신앙생활에 바탕한 형이상학적 시작태도를 견지하면서, 불의의 시대상황에 대해서는 거침없는 비판정신을 보여준 그의 삶은 바람직한 시인의 모습이 무엇인가 하는 전형이었다고 평가된다. 지훈과 목월에 이어 청록파시인으로서는 마지막으로 박시인이 타계함으로써 한국현대시사도 그 한 장을 접게 됐다.

그의 시를 관류해온 이미지인 산과 해, 바다, 깃발, 그리고 수석(水石)은 바로 자연의 사물에서 절대(絶對), 곧 신(神)을 추구하고 거기서 다시 인간의 윤리를 생각하는 그의 시정신의 원류를 나타내는 것들이다. 박시인의 그 정신은 첫 시집의 표제작인 「해」(49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밤의 어둠을 몰아내는 해의 모습에는 그가 희망하는 양지의 세계,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는 세계의 상이 투영되어 있다.

6·25와 4·19를 겪은 시절에 간행된 「거미와 성좌」(61년)「인간밀림」(63년)등의 시집에서 혜산은 이 땅 삶의 극단적 고통을 체험한뒤 사회적 현실비판에 기독교신앙을 결합한 시들을 발표한다. 「아우성도 못 지르며 흐르는 강이어/흐느끼도 못하며 흐르는 강이어/…/바람만 불면 바람만 크게 불면/한 번은 노도처럼 일어나야 할 강이어/깃발떼들이 휘날리면/쇠북소리가 울려나면/다시 살아나야 할 비둘기들이어/다시 피어나야 할 꽃무데기들이어」(「어둠 속에서」부분). 그의 시의 가장 큰 특징인 산문시의 유장한 호흡이 그대로 드러난다.

혜산은 또 70년대초 이후 15년간 수석에 관한 연작을 발표하며 「돌의 시인」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영겁을 바람부는/별과 별의/흔들림/그 빛이 어려 산드랗게/화석하는 절벽/무너지는 꽃의 사태/별의 사태/눈부신」(「천태산상대(天台山上臺)」 부분). 이 시를 첫 편으로 그는 「수석열전」(73년)과 「속·수석열전」(76년)등 두 권의 수석시집을 낼 정도로 「돌」, 곧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생활 후기를 일관했다. 수석에의 사랑은 돌의 형상 속에서 자연과 인간과 신성을 결합한 시정신의 표출이었다.

생래의 지조와 시대에 대한 반항정신으로 고고하게 품격을 지킨 그를 동료, 후배시인들은 높은 산에 비유하곤 했다. 구상 황순원 조병화시인 등이 그보다 조금 낮은 연배로 같은 길을 걸은 사람들이다. 55년부터 26년동안 교수로 재직한 연세대 출신 시인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유경환 정공채 정현종 신대철 마광수 이원조시인등이 대표적.

2년여 전부터 노환으로 병석에 누운 그는 생전에 그렇게 사랑한 자연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듯하다. 「흙으로 빚어졌음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리/바람으로 불어넣었음 마침내/바람으로 돌아가리」하는 최근작의 구절이 그를 말해준다. 가족들은 박시인이 7월에 누가복음을 읽고 남긴 『예수님은 맑고 깊고 아름다운 분, 심오하고 이념적이고 인권을 중요시하는 분』이라는 말을 그의 정신이 집약된 유언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하종오 기자>

□연보

▲1916년 경기 안성 출생, 아호 혜산(兮山)

▲1939년 「문장」지에 「향현(香峴)」 「묘지송(墓地頌)」등이 추천돼 등단

▲46년 조지훈(趙芝薰) 박목월(朴木月)시인과 함께 「청록집(靑鹿集)」간행

▲49년 첫 시집 「해」 간행

▲55년 연세대 전임강사

▲아세아자유문학상(56년) 서울시문화상(63년) 3·1문화상(70년) 예술원상(76년) 지용문학상(89년)등 수상

▲81년 연세대 교수 정년퇴임,「박두진시전집」(전10권) 출간

▲96년 예술원회원, 산문전집 「박두진문학정신」(전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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