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정계복귀 과정서 ‘결정적’ 결별김대중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기택 전 총재대행의 악연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91년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김대통령은 이 전대행이 이끌던 「꼬마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질기고도 모진」 인연을 시작했다. 이들은 합당후 민주당 공동대표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92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틈이 벌어졌다.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김대통령이 94년 아태재단을 만든게 그 이유.
94년말 당시 12·12 사태와 관련된 이전대행의 강경투쟁 방침에 대해 김대통령이 「국회복귀」를 유도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큰 금이 갔다. 결정적인 것은 95년 경기지사 후보 공천과정. 김대통령측은 이종찬(李鍾贊) 안기부장을 밀었으나 이전대행의 고집으로 장경우(張慶宇) 전 의원이 후보가 되면서 선거에 패배했다. 이때 김대통령은 『40년 정치를 했지만 저런 사람은 처음 본다』며 마침내 결별을 선언, 95년 국민회의를 창당했다.
반면 7선인 이 전대행은 지난해 11월 대선과정에서 「이회창지지 발언」으로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당에 기여하면서 이총재와 신동맹관계를 이어왔다. 지난 8월 한나라당 총재경선 때 이전대행은 이총재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이총재체제의 한 축으로 떠오른 상태였다. 이전대행은 평소 이총재의 「깨끗한 정치, 3김청산」에 공감한다고 말해왔다.<고태성 기자>고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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