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학교 발전기금의 조성 및 회계관리에 관한 규칙을 고쳐 초중고교 학내외 인사들을 대상으로 기부금 모금을 허용하겠다는 소식은 많은 걱정을 하게 한다.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서울대 입시제도를 혁신하고, 학제와 대학구조를 뜯어 고치겠다면서 학부모들에게 큰 짐이 될 기부금 모금을 양성화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일선 학교들이 충분한 예산 지원을 받지못해 운영비가 모자라는 사정을 모르는바 아니다. 운영비 부족이 너무 심해서 교육의 질이 현저하게 저하될 정도라면 다른 부문을 줄여서라도 교육 예산을 늘리든지, 아니면 씀씀이를 예산에 맞춰야 한다. 모자라는 돈을 거둬 쓰도록 허용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어렵던 시대에도 없던 일이다.
학교 발전기금 규칙의 요점은 학교가 개인·기업·단체 등을 대상으로 모금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것이다. 금지됐던 기부금을 허용함으로써 부족한 학교운영비를 보태려는 고육지책이다. 졸업생이나 지역사회의 기업 또는 단체들이 특정학교 발전을 위해 헌금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교육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제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대상에 학부모가 포함되는 데는 문제가 있다. 기부금이 금지돼 있는 지금도 일선 학교들이 영어교육을 위한 컴퓨터 설비가 없다, 학급비품이 모자란다, 운동회나 소풍경비가 없다는 등 온갖 이유를 내세워 잡부금을 거두고 있는데 이를 양성화하면 내놓고 돈을 거둬 학부모들만 허리가 휘게 될 것이 뻔하다.
교육부는 학부모들의 경우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기부금 외에는 받지 못하도록 엄격히 통제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이 지켜질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더구나 기부자가 희망하면 명단까지 공개할 수 있게 한다니 기부금 경쟁을 조장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 제도는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가 조직돼 있는 학교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많은 사립 중고교들이 반발할 소지도 있다. 학운위는 공립학교에만 돼 있고 사립학교에는 없는 조직이어서 1,700여개 사립학교들은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다. 지역격차도 문제다. 농어촌 지역 학교들은 별 혜택이 없고 부유층이 모여 사는 대도시 특정지역 학교들만 유리해질테니,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 고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으로 규정한 나라에서 학교운영비는 마땅히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학외인사들에게 발전기금을 받는 것은 몰라도 학부모를 상대로 한 기부금 허용방침은 재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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