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뒤흔들고 있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은 새로운 정보화 매체인 사이버 공간의 존재를 새삼 일깨워준 사건이다. 포르노성 내용을 가감없이 전달한 데 대한 시비가 일었지만 전세계가 시공(時空)을 넘어 한 통속이 될 수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 보이는 괴력을 발휘했다.당초 이번 스캔들이 컴퓨터를 통해서 시작됐다는 것도 우연이 아닌듯 싶다. 대통령의 성추문을 알아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파장을 고려해 보도를 미루는 동안 이를 가로챈 인터넷 전자신문 「드러지 리포트」는 특종의 개가를 올렸다.
이후 양상도 비슷하게 전개됐다. 워싱턴 정가, 뉴욕 증권가 등지의 스캔들 관련 「소문」이 여과없이 웹사이트에 올려지면 기존 매체들이 허둥지둥 따라가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이미 알려진 사실」앞에 뉴스 밸류니, 선정성 시비니 따질 겨를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옐로(황색) 저널리즘」에 대한 때늦은 자성의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을 뿐이다.
또한 「21세기로의 다리」를 자임하며 정보화 하이웨이 구축에 앞장섰던 클린턴 자신이 인터넷에 당한 것은 아이러니이다. 그런가하면 장안의 지가를 높인 스타보고서를 게재했던 뉴욕타임스의 웹사이트는 13일 해커들의 기습을 받아 하루종일 불통되는 사태를 빚었다.
기술에 중독된 현대 문명에 대한 경종의 소리 하나가 소위 「Y2K」문제이다. 두자리 끝수만 아는 컴퓨터가 2000년을 1900년, 또는 00년으로 잘못 인식함으로써 발생할 지 모를 세계적인 대혼란이다.
전산망으로 운영되는 세계 금융망이 마비되는 것은 물론 원전, 공장 등이 올스톱하는 공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세기말은 다가오지만 마땅한 소재를 못 찾던 종말론자들에게는 귀가 번쩍 뜨일 희소식이다.
심지어 미국의 한 기독교 정통교파는 교인들에게 정전, 약탈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일러 비상식량, 총, 구급약 등이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고 한다.
운영자의 묘에 따라 약(藥)도, 독(毒)도 될 수 있는 신기술의 이중성이다.<뉴욕>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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