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기적이 구조조정 기로에/경공업→중화학→반도체 산업 무게중심 급속변화/올 수출 사상 첫 감소 초고속 질주에 브레이크/업종 재정비에 사활달려한국산업의 반세기는 폐허에서 이루어낸 기적의 역사였다. 일천한 역사와 석유 한방울 나지않는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이 200여년동안에 달성한 성과를 반세기만에 일구어냈기 때문이다. 산업의 구조는 경공업 중공업 첨단정보통신 등 단계를 거쳐면서 주력산업의 면면이 바뀌었고 현재 반도체 조선 철강 등 세계 정상급 주력을 거느린 선진국형으로 정착됐다. 이과정에서 산업의 성장패턴도 수출드라이브 등 정부주도형에서 자동차 전자 기계 등 제조업 주력들을 키운 대기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추세다.
■삼분산업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산업은 물자부족현상을 업고 등장한 제당 제분 시멘트등 「삼분산업」으로 출발했다. 50년 한국전쟁의 발발을 계기로 산업시설 대부분이 파괴되면서 복구건설사업과 함께 방직 화학산업이 시작됐다. 수출에서는 40년대 수산물이 주종을 이루었고 50년들어 대한광업진흥공사가 미국으로 수출했던 중석 흑연 철광등 광산물이 주요품목으로 등장했다. 특히 탄환등 무기재료로 사용된 중석은 50년대 내내 수출상품 1위를 기록했다.
■경공업전성시대
60년대초반에는 정부가 경제개발과 수출드라이브를 걸면서 섬유 목재 신발류등 경공업이 전성기를 이루었다. 동명목재의 합판과 중소수출업체들의 가발 신발등 경공업제품들의 수출비중은 80%에 육박할 수준이었다. 현재의 주력산업인 전자와 자동차 철강등이 태동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68년 포항제철의 설립으로 산업의 쌀인 철강산업이 시작됐고 전자산업은 69년 전자공업진흥법이 제정된후 마산등지에 수출자유지역이 설치되면서 기틀을 마련했다. 자동차도 60년대 초 새나라자동차(대우자동차의 전신)가 설립되고 자전거제조업체 경성정공이 기아산업으로 탈바꿈했으며 하동환 자동차공업(쌍용자동차전신)이 설립된 것을 첫역사로 본다. 65년 아시아자동차, 67년 현대자동차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중화학으로 중심이동
정부의 중화학공업육성정책에 따라 70년대들어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중심으로 바뀌었다. 최초의 국산고유모델 자동차인 포니승용차가 등장했고 제3의 불인 원자력을 이용한 고리원전이 가동돼 원자력산업의 기초를 닦았다. 기계 선박 철강등 중화학제품이 수출의 절반을 차지했고 77년에는 대망의 수출100억달러를 기록했다. 중동해외건설붐에 힘입어 해외건설에서만 40억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인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중화학의 융성기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저금리 저달러 저유가등 소위 3저호황에 힘입어 경제가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중화학부문은 대대적인 투자로 서서히 규모의 경제를 갖추면서 위력을 발휘했다. 전자는 88년 161억달러를 수출, 섬유를 제치고 수출1위산업으로 올라섰고 자동차도 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해외진출에 나섰다. 특히 삼성전자등 전자업계의 수출은 80년대 초반 20억달러에서 89년 180억달러로 급증했다. 여기에 힘입어 반도체 컴퓨터 가전이 우리나라 수출의 간판으로 부상했다. LG화학 대한유화 현대석유화학 삼성종합화학등 대기업들이 유화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것도 80년대 후반이다.
■첨단분야의 경쟁과 구조조정
90년대이후 반도체 항공우주산업 정보통신분야등 첨단분야에 대한 과감한 영토확장이 시작됐다. 반도체는 특히 92년부터 섬유 철강 자동차를 제치고 수출 1위로 부상했고 94년에는 단일품목으로는 처음으로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92년 메모리생산량에서 일본의 도시바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하면서 지금까지 정상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이후 닥친 국제통화기금(IMF)체제로 인해 자동차 반도체등 주력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한때 세계 정상급이었던 철강 조선 자동차 반도체등 우리의 주력업종들은 대부분 구조조정의 도마위에 오른 상태다. 수출도 사상처음으로 감소세가 예고되면서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구조조정의 성사여부가 우리나라의 산업이 닥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지를 가늠할 시험대가 된 셈이다.<이재열 기자>이재열>
◎무역의 변화/수출 48년 2,200만弗서 97년 1,361억弗로
건국이후 한국사회의 다른 어떤 분야보다 큰 변화를 겪은 것은 무역부문이다. 폐쇄적 농경사회에 불과했던 신생독립국이 전란의 상처를 극복하며 개방형 공업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무역부문은 질과 양적측면 모두에서 급성장을 거듭했다.
우선 무역규모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48년 건국당시 2,200만달러에 머물렀던 수출액은 50년이 흐른 97년에는 6,200배가 늘어난 1,361억6,400만달러를 넘어섰다. 수출이 늘어나면서 수입역시 50년 4,800만달러에서 97년에는 1,446억1,600만달러로 3,000배 이상 늘어났다. 또 건국당시인 48년 1.1달러였던 1인당 수출액도 97년에는 2,961달러로 3,000달러선에 육박하게 됐다.
교역대상국 역시 크게 변했다. 50, 60년대는 물론이고 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주요교역국은 미국, 일본과 유럽제국이었으나 80년대 후반이후 경제규모의 확대와 신흥공업국들이 등장하면서 동남아, 중국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 70년 한국의 10대 수출국은 미국(1위), 일본(2위), 독일(4위), 캐나다(5위), 네덜란드(6위), 영국(7위) 등이었으나 97년에는 캐나다, 네덜란드 등은 10위권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교역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수출입품목도 시대변화의 영향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산업화가 진행되기 전인 50, 60년대의 주요 교역품목은 1차상품이 대부분이었지만 60년대 중반을 전환점으로 2차상품위주로 재편됐다. 특히 수입품목은 50, 60년대에는 「생계형」위주였으나 70년이후에는 「생산형 」으로 구조조정을 했다. 실제로 61년의 주요 수입품은 양모(4,200만달러), 어구류(3,002만달러) 원면(2,900만달러) 곡물(2,400만달러) 대두(830만달러) 등 국민들의 민생고를 해결할 물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70년이후 가공무역에 필요한 자본재와 에너지의 비중이 커지기 시작했는데 올 상반기 10대 수입품은 전체의 12.6%를 차지하는 원유를 비롯, 반도체(12.3%), 귀금속(4.0%)등이다.<조철환 기자>조철환>
◎재계 부침의 역사/50년대 삼양사·삼호방직 두각/60년대 월남특수 현대·한진 등장/70년대 봉제수출 대우 급부상/90년대 기아·한보 등 줄줄이 몰락
「재계에 영원한 강자는 없다」.
건국후 50년이 지나는 동안 재벌사에선 찬란한 별들이 수없이 명멸했다. 혜성처럼 나타나 제왕처럼 군림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기업들이 수두룩했다. 어느날 갑자기 재계의 중심부에 우뚝솟은 기업도 많았다.
해방이후 재계판도는 10년 단위로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제1기는 일제강점에서 해방된 후 60년 자유당정권이 몰락할 때까지의 재벌태동기로 볼수 있다. 당시는 변변한 산업시설이 없었지만 제당 방직 시멘트등 소위 「3분(粉)산업」이 산업의 기초를 닦았다. 설탕분야는 삼성·삼양사, 방직은 삼호방직·대한방직, 시멘트는 동양·개풍이 대표주자였다.
60년대의 제2기는 정부의 개발정책이 본격화하고, 수출촉진및 독과점 이익보장등에 힘입어 신 재벌판도가 형성됐다. 월남전 특수도 겹쳐 구재벌들이 물러나고 신재벌들이 재계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현대(건설 자동차) 신진(자동차), 쌍용(시멘트), 한화(화약), 대농(방직 양곡수입업), 한진(운수및 항공) 등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60년대는 정부의 경제개발 및 수출드라이브로 섬유 목재 신발류등 경공업이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유신정부시절인 70년대는 제3기로 중화학육성정책에 힘입어 재벌판도가 또한번 요동쳤다. 종합상사제도가 도입돼 재벌들마다 수출드라이브에 가속페달을 밟은 것도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열사의 사막에서 건설로 달러를 긁어모은 현대가 79년에 영원한 재계왕자로 군림해온 삼성을 제치고 재계랭킹 1위로 부상했다. 트리코트지와 봉제수출로 떼돈을 번 대우가 조선 자동차까지 인수, 대우신화를 창조하며 재계랭킹 4위로 우뚝 솟았다. 80년의 5공화국출범이후 90년까지의 제4기는 유화 등 중화학산업에 대한 재벌들의 신·증설경쟁이 가열됐다. SK(구 선경)는 80년 SK(구 유공)를 인수하여 재계5위로 점프했다. 당시는 현대 삼성 LG 대우등 4대그룹이 5대이하 그룹을 엄청난 격차로 따돌리면서 재계4인방시대를 확고히 굳힌 시기였다.
90년대이후 제5기는 재계50년사중 최대의 격변기였다. 90년 전반기엔 3저호황등에 힘입어 재벌마다 정보통신 멀티미디어 등 첨단산업과 유통에 대한 투자및 기업인수가 절정에 달했다. 전반기는 한라(조선 중공업) 아남(반도체) 한보(건설 철강) 한솔(정보통신 화학 금융) 신세계(유통)등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후반기엔 최악의 경기침체에다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금융및 외환위기로 한보와 기아가 몰락하는 것을 신호탄으로 부도공포가 재계를 맹폭격했다. 지난해이후 30대 그룹중 기아 한보 해태 진로 동아 한일 한라 뉴코아 삼미등 10여개 그룹이 부도로 쓰러지면서 재벌지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6대 이하 그룹들은 롯데 등 극소수 그룹을 제외하곤 대부분 협조융자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대상으로 지정돼 「수술대」 위에 올라있다.<이의춘 기자>이의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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