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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대에 묻는다/柳時敏 시사평론가(한국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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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대에 묻는다/柳時敏 시사평론가(한국시론)

입력
1998.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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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학생 싹쓸이 ‘일류대학’/연구실적은 겨우 세계 100위권/학제개편만으론 개혁 안돼최근 서울대는 신입생의 계열별 모집, 2년제 학부대학 설치, 의예과 폐지와 의학 관련 분야 전문대학원 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구조조정안을 공개했다. 고교장 추천제에 의한 학부대학 신입생 무시험 전형과 함께 2002학년도부터 시행될 서울대의 새로운 제도는 일류대와 인기학과 중심의 과열 입시경쟁과 초중등교육의 파행을 완화하는데 적지않게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이며, 여기에 대해서 인색한 평가를 내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서울대의 개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민족의 지성」임을 자랑하는 서울대의 앰블럼에는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라틴어 문구가 들어있다. 서울대와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묻는다. 과연 서울대는 거기 비추어 부끄럽지 않은 대학인가. 서울대의 경쟁력은 애초부터 우수한 학생들을 「싹쓸이」하고 시설과 연구비 등 정부의 재정지원을 다른 국립대학보다 몇배나 많이 받고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정치적 사회적 권력기관을 장악하고 있는 서울대 인맥의 지원을 받는 데서 나온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인가.

서울대의 첫번째 문제는 정말로 「일류대학」이냐는 것이다. 학력을 기준으로 그 나라 대학 신입생의 최상위 1%를 독점하다시피하는 대학은 세계적으로 극히 희귀하다. 그런 면에서 서울대는 분명 「일류대학」이다. 그런데 그런 서울대가 연구실적을 기준으로 한 국제비교 조사에서는 세계 100위권에도 들지 못한다. 학문연구와 교육의 역량은 아시아에서 조차도 일본은 물론이요, 홍콩과 대만의 대학에도 뒤지면서 10위권에 겨우 턱걸이를 할 뿐이다. 좀 심하게 말해서 서울대는 애초부터 경쟁상대가 되지않는 국내대학과 비교할 때만 일류로 보이는 「골목대장」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 책임이 정부에 있든 교수들에게 있든간에, 진지하게 서울대의 개혁을 거론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새로운 지식의 생산(진리탐구) 능력의 발전을 제약하는 요인에 대한 진단과 대책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4+2를 2+4로 바꾸는 학제개편이 연구력 향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설명도 없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학제개편인가.

두번째는 「공공재정 운용의 합리성 문제」또는 「국사립대학의 역할 분담문제」다. 서울대는 그냥 「일류대학」이 아니라 공공재정으로 운영하는 국립대학이다. 인재를 양성할 민간의 역량이 부족했던 국가건설의 초창기에 서울대가 각 분야의 인재를 양성한 것은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는 「근거없는 사명감」또는 「패권주의」를 버려야 한다.

내가 아는 어떤 재능있는 젊은이는 국립서울대와 역시 국립인 사법연수원에서 이론과 실무를 익힌 다음, 곧바로 잘나가는 법률회사에 취직해서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경력을 쌓고 있다. 머지않아 독립해서 요즘 유행하는 기업 인수합병 분야의 전문변호사가 될 것이다. 그는 단 하루도 국가기관을 위해 일한 적이 없으며, 그 법률회사는 단 한푼의 대가도 치르지 않고서 국가가 키워낸 이 「고급인력」을 써먹었다. 「국립서울대」가 수천만원짜리 악기로 레슨을 받는 부자집 아이들에게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로 불합리하다. 이런 사람들을 양성하는 일에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국민의 혈세를 지출해야 하는가.

서울대는 국민세금으로 운영할 필요가 없거나, 그래서는 안되거나, 사회적 수요가 거의 없는 분야를 과감하게 정리함으로써 스스로 작아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 구조조정안은 여전히 모든 분야를 그대로 끌어안고 가려는 「패권주의」의 냄새를 짙게 풍긴다. 지나친 요구일지는 모르지만, 연구와 교육의 주체인 서울대 교수들이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미래와 나라의 운명이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기득권의 포기를 포함한 과감한 개혁에 나서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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