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몇푼에 자식을…”/가족윤리 회복 의식개혁운동 펼쳐야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초등학생의 손가락을 자른 범인이 아이의 아버지라는 충격적인 사실에 국민들은 할 말을 잊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돈 몇푼에 차마 자식의 손가락을 잘라낼 생각을 하다니…』 생활고를 벗어나기 위해 자식을 희생양으로 내세운 인면수심의 아버지, 이런 아버지를 위한다며 선뜻 손가락을 내민 초등학교 3학년짜리 철부지 아들. 윤리의 실종을 넘어 이미 도덕적 파탄상태에 이른 우리사회의 숨길 수 없는 단면을 확인하면서 모두가 자괴감으로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국민들은 이 끔찍한 사건을 접하고 경악을 감추지 못하면서 이젠 정말 범사회적인 도덕성 회복운동이 필요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급격한 가족윤리의 해체와 물질만능주의 팽배 등 각종 사회병리 현상들과 자식을 소유물로 보는 왜곡된 의식구조 등이 한데 엉켜 빚어진 상징적 사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고려대 손장권(孫章權·사회학) 교수는 『한마디로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이라며 『하루빨리 사회구성원들의 자생력, 가족에 대한 자부심 등을 제도적으로 회복시키지 않으면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고 충고했다.
한국사회병리연구소 백상창(白尙昌) 소장은 『급작스런 근대화 과정에서 대가족이 핵분열되고 이에 따라 핵가족 안에서도 가족윤리의 해체현상이 나타나면서 가족간에도 원시적 증오감이 여과없이 노출되고 있다』며 『더구나 IMF사태이후 생존권이 보장 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희망을 잃어버리고 급성적인 분노와 우울증상이 동시에 폭발하고 있는 등 우리사회가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고 경고했다.
신경정신과 의사 이나미(李那美·여) 박사는 『이번 사건의 저변에는 내 자식은 내 것이므로 내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오도된 가치관이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박사는 『범인은 정신병자라기 보다는 구체적으로 돈을 노린 계획범행을 저지른 점으로 미루어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일 가능성이 높다』며 『통상 정신병자는 순간적 충동이나 증상에 의해 불가항력적으로 범행을 저지르고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점에서 구별된다』고 분석했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모임」의 나원형(羅源炯) 회장은 『어쩌다가 우리사회가 이 지경이 됐는지 참담한 심정』이라며 『이 사건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철학과 가족에 대한 책임의식이 상실됐음을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개탄했다.
「좋은 부모되기 운동본부」 정송(鄭松·44) 소장도 『해외토픽에서나 등장할 잔혹성이 혈연주의사회인 우리에게서 빚어졌다는 것을 중시해야 한다』며 『IMF에 따른 경제난에 의한 부작용과 후유증을 치유하려면 물질적·경제적 대증(對症)요법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며 정신·의식개혁운동 등을 통한 가치관 개혁운동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최윤필 기자>최윤필>
◎‘손가락 강도’ 범인은 보험금 노린 아버지/자작극… 아들설득 예행연습까지
경남 마산중부경찰서는 12일 초등학생 손가락절단 강도사건의 피해자 강모(10)군의 아버지(42·역술인)에 대한 철야조사에서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뒤 강도로 위장했다』는 자백을 받아내고 이날 아버지 강씨에 대해 상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강씨는 범행 전 아들을 설득, 예행연습까지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올해 3월 평소 알고 지내던 역술인 주모(44·여)씨의 언니(47·보험모집인)를 통해 아들명의로 1,000만원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뒤 7일 새벽 2시께 마산시 합포구 교방동 자신의 집에서 아들의 오른손 새끼손가락 두마디를 가위로 절단했다.
강씨는 범행직후 자른 손가락을 화장지로 감아 집에서 10여m 떨어진 학교돌담 사이에 밀어놓고 흙으로 은폐한 뒤 경찰에 『3인조강도가 침입, 돈을 주지 않자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고 달아났다』고 허위신고를 했다.
경찰조사결과 강씨는 보험에 가입한 뒤 두달동안 아들에게 『나는 병들어 곧 죽는다. 네가 다치면 돈이 나오니 손가락을 자르자』며 집요하게 설득, 강군도 결국 이를 「허락」한 것으로 밝혀졌다. 강씨는 또 범행 이틀전인 5일에는 주씨를 만나 『손가락 한, 두마디 잘리면 상해등급이 몇급이냐』고 물은 뒤 『손가락 마디 두 개가 잘리면 일시불로 1,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대답을 듣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사건의 파문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수사전담 인력 50여명을 배치, 인근 불량배 80여명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탐문수사를 벌이던 도중 주씨로부터 강씨의 보험가입 사실을 전해듣고 수사방향을 전환했다.
경찰은 11일밤 강씨를 임의동행, 주씨 등과 대질심문 끝에 12일 새벽 범행일체를 자백받은데 이어 오전 강군의 잘린 손가락을 찾았다.
한편 경찰은 사건발생 이틀전인 5일 강씨집 인근 할인매장에서 스타킹 세켤레를 사간 사실이 드러나 이번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됐던 양모(18)군 등 10대 3명은 다른 절도를 저지른 혐의로 입건했다.<마산=이동렬 기자>마산=이동렬>
◎“얼마나 괴로웠을까… 강君을 돕자”/학교·주민들 모금 확산
『우리 친구가 너무나 불쌍합니다. 다같이 친구를 도웁시다』
손가락절단 사건의 진상이 알려진 이날 강군이 다니는 K초등학교 4학년1반 어린이들은 아침부터 학급회의를 열었다.
한 어린이는 『아들의 손가락을 잘라 돈을 벌겠다고 생각한 걔 아빠가 너무나 밉다』며 울먹였고, 또다른 어린이는 『친구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지 짐작이 간다』며 『우리 모두 병원에 찾아가 위로하자』고 제안했다.
오전 8시40분부터 예정에 없이 열린 회의에서 교사들은 시종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아들을 제물로 보험금을 타려했던 아버지를 집중 성토한 뒤 『그러나 범행을 저지른 아버지는 미워해도 강군에 대해서는 최대한 교육적인 차원에서 도와줘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교사들은 사건의 진상이 좀더 자세히 드러나는 대로 다시 논의를 거쳐 모금운동을 확대하는 등 강군을 다각도로 도울 방법을 찾기로 했다.
이 학교 어머니회 회장 백혜숙(白惠淑·40·여)씨는 『그 아이가 사건후 며칠동안 얼마나 괴로웠을 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며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지만 편부슬하에서 자라온 강군을 어떻게 도와줘야할지 어머니들끼리 회의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소식을 듣고 분노, 수사본부에 몰려온 주민 100여명은 강씨가 탄 경찰차를 에워싸고 『파렴치한 저런 인간은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 『불쌍한 아들을 대신해 손가락 10개를 모두 자르라』고 고함치며 흥분했다.
한 주민은 『한동네에 산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며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생활고 때문에 아들의 손가락을 잘랐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엄정한 법적용을 촉구했다.<마산=이동렬 기자>마산=이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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