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6월∼10월/르윈스키 백악관 재취업 노력 수포클린턴은 르윈스키의 일자리를 구해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다. 백악관에서 다시 일하고 싶어하던 르윈스키는 7월3일 클린턴에게 위협적인 편지를 보냈다. 『일자리를 못얻으면 당신과 있었던 일을 사람들에게 알리겠어요』
이 기간동안 클린턴과 르윈스키와의 만남은 클린턴의 개인비서 베티 커리를 통해 이뤄졌다. 8월16일 클린턴의 생일 사흘전 선물을 가져간 르윈스키는 대화도중 클린턴의 성기를 만지는 등 간절하게 매달렸지만 클린턴은 오히려 당혹스러워했다고 회고했다. 10월 6일 르윈스키는 마침내 커리로부터 백악관에서 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최후통첩을 받았다.
◎97년 10월∼11월/계속된 일자리 요구에 클린턴 호통
10월10일 클린턴은 구직문제로 안달하는 르윈스키에게 전화를 걸어 화를 냈다. 『네가 이런 사람인 줄 알았다면 너하고 관계하지 않았을 거야』 이날 전화통화에서 다시는 백악관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르윈스키는 뉴욕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클린턴에게 요구했다.
클린턴은 르윈스키가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윌리엄 리처드슨 주유엔대사에게 부탁했다. 르윈스키는 그러나 유엔보다는 「민간부문」에서 일하고 싶어했다.
◎97년 11월/멕시코 대통령 만찬직전 클린턴 만남
10월 중순께 클린턴은 르윈스키의 구직문제를 위해 백악관 전변호사 버넌 조던을 끌어들였다. 11월5일 조던은 커리의 주선으로 르윈스키와 만난 뒤 대통령도 접견했으나 무슨 대화가 오갔냐는 질문에 『자세히 기억못한다』고 답변했다. 조던은 처음 증언에서는 르윈스키와의 만남 자체를 아예 부인했었다.
클린턴을 만나게 해달라며 커리를 보챘던 르윈스키는 11월13일 에르네스토 세디요 멕시코대통령과의 만찬직전 백악관 개인집무실에서 간신히 클린턴을 만날 수 있었다. 르윈스키는 이날 「오럴섹스의 쾌감을 높이는 박하의 효과」를 설명한 메모를 클린턴에게 건넸다.
당시 르윈스키의 입속에는 박하가 들어 있었으나 클린턴은 오럴섹스를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며 거절하고 세디요 대통령에게 급히 달려갔다. 당시 일자리 문제로 더욱 절망감에 빠진 르윈스키는 조던으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다며 커리에게 하소연했다.
◎97년 12월5일∼18일/폴라존스 증인에 르윈스키 포함
12월5일 성희롱으로 클린턴을 제소했던 폴라 존스측 변호인단은 백악관 변호사 로버트 베넷에게 증인목록을 전달했다. 이 목록에는 르윈스키의 이름도 있었다.
다음날 갑작스럽게 백악관으로 불려간 르윈스키는 조던이 일자리를 찾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며 클린턴에게 불평했다. 당시 이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북서쪽 출입구를 지킨 경호원들은 경호대장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걸로 해달라』
17일 클린턴은 르윈스키에게 전화를 걸어 증인목록에 르윈스키가 포함된 것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말한 뒤, 「만약 존스사건에 소환된다면」이라고 운을 떼며 다음과 같이 통보했다. 『너는 베티 커리를 만나기 위해서 백악관을 방문한 거야』 다음날 르윈스키는 뉴욕에 있는 회사 두 곳에서 면접을 볼 수 있었다.
◎97년 12월19일∼98년 1월4일/증인소환 받고 클린턴 방문
12월19일 르윈스키는 존스사건의 증인으로 출석해달라는 소환장을 받았다. 소환장에는 클린턴의 선물을 제출해달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르윈스키는 울음을 터뜨리며 조던의 사무실을 찾았다. 조던은 즉시 클린턴에게 전화해 르윈스키의 방문사실을 알린 뒤, 르윈스키에게 변호사 프랜시스 카터를 소개했다.
12월28일 백악관을 찾은 르윈스키는 클린턴에게서 초콜릿등 크리스마스선물을 받았다. 열정적인 키스에도 불구, 르윈스키는 클린턴이 뭔가 「주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날이 대통령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날 오후 르윈스키의 아파트를 찾은 커리는 소환장에서 요구한 클린턴의 선물상자를 도로 찾아와 자신의 침대 밑에 숨겼다. 르윈스키는 이날 일에 대해 『커리가 나를 찾아와 자기한테 줄 물건이 없느냐고 물었다』고 증언했다. 커리는 그러나 이날 일에 대해 『모른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98년 1월5일∼16일/르윈스키 부인서명후 뉴욕취업 면접
1월5일 르윈스키는 진술서 문제로 카터와 만난 뒤 클린턴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르윈스키가 백악관에서 국방부로 자리를 옮긴 것에 대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자 클린턴은 이렇게 조언했다. 『입법부쪽 사람들이 국방부에서 일하도록 도와줬다고 말하면 돼』
다음날 르윈스키는 카터에 이어 조던과도 만나 진술서 문제를 논의 했다. 르윈스키는 자신과 클린턴이 어떤 종류의 성관계도 갖지 않았다고 기록된 진술서에 최종서명했다. 그후 르윈스키는 조던의 추천으로 뉴욕의 한 회사에서 면접을 볼 수 있었다.
◎98년 1월17일∼현재/클린턴 증언·대국민 성관계 부인
클린턴은 1월17일 존스사건 증언 당시 르윈스키에 관해 많은 질문을 받았다.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한 증언대에서 클린턴은 르윈스키와 『어떤 성관계도 갖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날 저녁 커리를 찾은 클린턴은 다음 몇가지를 「확인」시켰다. 『내가 르윈스키와 있었을 때 당신도 같이 있었어』『르윈스키와 따로 있었던 적은 없었어』 『내가 르윈스키를 만진 적은 없었어』
르윈스키와의 성관계가 공개되자 클린턴은 자신의 가족을 비롯, 미국민 전부에게 그런 일은 절대로 없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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