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오늘 개막된다. 천년고도 경주에서 「새 천년의 미소문화의 전승·융화·창조」를 주제로 11월10일까지 두 달동안 열리는 국제행사이다. 원래 엑스포는 국제박람회기구(BIE)의 공인을 받아야 하지만, 공인 여부와 관계없이 이 행사는 엑스포의 개념을 산업에서 문화로 바꾸어 보자는 의미를 갖고 있다. 주최자인 경북도는 7월1일 제2기 민선자치시대를 열면서 「문화의 경제화와 경제의 문화화」를 선언한 바 있다. 이번 행사는 출범 2기를 맞은 지자체의 문화역량을 점검하는 계기도 되고 있다.지자체의 문화정책은 지금 어떤 양상인가. 문예진흥원이 발간하는 「문화예술」 9월호는 「지방자치단체장의 문화예술정책구상」이라는 특집에서 지자체장들의 문화행정과 정책구상을 그들의 입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한결같이 21세기가 문화의 세기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저마다 문화시장·문화도지사로 기록되고 싶어 한다. 아무리 재정이 어렵더라도 문화예술을 진흥하겠다거나 문화정책을 행정의 중심에 놓겠다고 다짐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지원은 하되 간섭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자체장들의 문화인식은 이렇게 충실하다.
그러나 잘 짜여진 모범답안같다. 공무원들은 사안마다 일정한 정답을 만들어낸다. 청소년대책이 문제가 되면 외듯이 ①②③순으로 막힘 없이 대답하고, 각종 이벤트의 사후 시설운용문제를 물으면 빈틈없는 대책을 제시한다. 문화예술행정에서는 그런 도식성이나 경직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획일성과 거대화지향의 문제가 발생한다. 「모범답안」에 맞는 규모와 틀을 과시하려는 욕심은 획일성과 거대화지향을 낳고 창의성과 독자성을 떨어뜨린다. 경주문화엑스포의 표어중 하나인 「세계는 경주로 경주는 세계로」는 서울올림픽때의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와 똑같다.
문화예술행정은 획일성과 거대화지향에서 벗어나 새로 틀을 짜야 한다. 부동산경기 침체와 잇단 부도로 인한 세수감소로 공무원월급 지급도 불투명해진 지자체가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재정이 어렵더라도…』하는 다짐은 공허하다. 새 틀을 짜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방학 육성과 문화경영자(또는 문화행정가) 양성이다. 먼저 부산학 안동학과 같은 지역연구의 활성화를 통해 정체성과 지향점을 정립하고 그에 초점을 맞춰 행정과 이벤트를 펼쳐야 한다. 판소리의 고장 전주를 「한국의 잘츠부르크」로 만들고 섬유산업의 도시 대구를 「한국의 밀라노」로 키우기로 정했다면 고집스럽게 추진해 새로운 전통을 일구어나가야 한다. 추진과정에서는 서울의 유명인사들을 끌어들여 일을 벌임으로써 결과적으로 내용이 비슷해지고 지역주민들은 소외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지역의 문화행정가나 예술감독은 그래서 필요하다.
그리고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광주비엔날레는 공무원이 주축인 사무국과 문화예술가들이 주축인 전시기획위원회의 갈등으로 2000년에 열 제3회 행사의 개념도 아직 설정하지 못했다. 전시기획위는 공무원조직의 집행권 독점에 이의를 제기, 전시총감독에게 인사제청권을 줄 것을 요구했지만 행정당국은 듣지 않고 있다. 또 21세기의 첫 해이자 경상감영 설치 400주년이 되는 2001년을 「대구문화의 세계화 원년」으로 정한 대구는 시장을 위원장으로 21세기문화행정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경주문화엑스포도 조직위원장은 도지사이다. 이처럼 관(官)이 주도를 하는 것이 지원과 간섭의 문제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면밀히 따져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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