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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 15년만에 첫 장편 ‘세상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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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 15년만에 첫 장편 ‘세상의 저녁’

입력
1998.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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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야기로 탐색하는 ‘神과 인간’/“신은 인간 희생속에 살아있다” 메시지중견작가 정찬(45)씨가 등단한 지 15년만에 첫 장편소설 「세상의 저녁」(문학동네 발행)을 냈다. 「완전한 영혼」등 세 권의 창작집을 냈고 95년 중편 「슬픔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받는 등 작가적 역량을 인정받아온 그가 다니던 직장까지 관두고 써낸 야심작이다.

정씨는 우리 문단에서는 희귀하게 「신」의 문제를 천착해온 작가다. 이승우, 백도기씨 등이 같은 주제를 다루기도 했지만 정씨는 일관되게 신과 인간의 문제를 문학적 화두로 삼아왔다. 이번 작품은 그 탐색의 한 마디를 이루는 작품으로 읽힌다.

소설은 인간이 직면할 수 있는 고통의 극한까지를 체험한 황인후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출생부터가 고통이다. 그는 가톨릭 신부의 사생아다. 간질병까지 앓아 불우한 성장기와 폐쇄적 성격을 갖게 된 그는 강혜경이란 여자를 알게 돼 부부가 된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들마저도 선천성 심장기형으로 죽는다. 황인후는 신을 증오하며 자학하다 유리걸식하는 부랑아가 된다. 그러던 그에게 낯선 사내가 찾아온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황인후는 기도로 아이를 살리는 기적을 이루려 한 자신의 바람은 교만이며, 진정한 구원은 희생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정체를 숨긴채 병든 노인들을 보살피다 결국 눈쌓인 거리에서 숨을 거둔다….

내용으로 보면 무슨 종교소설, 신학소설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정씨는 독자들이 끊임없이 책장을 넘기도록 만드는 낯설고도 생생한 이야기 전개, 등장인물들이 가진 인간적 고뇌를 눈앞에 보이듯 그려냄으로써 그런 선입관을 뛰어넘는다. 소설은 또 황인후와 강혜경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로도 읽힌다. 독자는 모든 좋은 소설들이 제공하는 「통과제의」의 경험을 「세상의 저녁」을 통해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정씨가 전하는 메시지는 이것이 아닐까. 『신은 인간의 희생 속에 살아 있다』.

정씨는 왜 이렇게 신의 문제에 집착하는가. 『인간의 역사는 신을 왜곡해왔다. 기적을 행한다는 「심판자로서의 신」이라는 관점은 신의 본모습을 가려왔다』는 것이다. 정씨는 그 자신 기독교신자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신론자는 아니다. 『신은 내 몸 속에 깊은 상처를 만들어놓았어. 하지만 그것은 힘이기도 해. 상처는 세상의 질서를 경멸하는 힘을 나에게 주거든. 신의 상처를 지닌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지』하는 작품 속 주인공의 말처럼 그에게 신은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상처이자 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의 다른 이름인 것같다.<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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