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이틀에 걸친 경남·부산지역 방문내내 「중대결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부정부패 일소와 지역감정 타파를 역설했다. 『절대로 굴복하거나 아첨하지 않고 소신을 지켜 새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단호한 어조에서는 사명감과 비장감마저 묻어났다.비슷한 때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는 김대통령의 행태를 「황제」에 비유하며 『지금처럼 대통령이 민주헌정 기조를 파괴하면 내각제를 심각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새로운 카드를 빼들었다. 그의 어투에도 항장(抗將)의 결연함이 배어있었다.
『정치인이란 교도소의 높고 좁은 담장위에서 곡예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여야 가릴 것없이 어느때보다 실감나는 요즘, 여야지도자가 국민들에게 던진 메시지에는 「감동적」요소가 적잖이 담겨있다. 국가기관이 일개 정당의 사금고로 전락하는 국기(國基)문란 행위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나, 사정과 의원빼가기로 야당을 파괴하려는 책략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각오는 최소한 지지자들의 가슴 정도는 울렁이게 했을 법도 하다.
그러나 먹고사는 문제가 현실화했거나, IMF칼날이 언제 목에 들이닥칠지 몰라 불안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대다수 국민들은 그다지 감동적인 것같지 않다. 발언의 액면이 실망스러워서가 아니라, 권력과 정치권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시답지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정치인 사정의 주제어인 「대가성(代價性)」이라는 잣대는 여전히 확실한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채 호사가들의 입에서 희화(戱畵)되고 있고, 비리혐의 의원들은 「강한 야당」이라는 우산을 쓰고 「방탄국회」속으로 숨어버렸다.
선거법위반혐의로 기소된 두 의원은 「탈당 무죄, 탈당거부 유죄」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각각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탈당의원들은 약속이나 한듯 『국난극복과 정치소신을 펴기위해』를 입에 달고 다닌다.
그러나 역시 그들만의 잔치에는 감동이 없다. 항상 미래를 말하고 사명감으로 충만한 우리 정치의 지평은 진정 감동으로 다가올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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