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묘소 참변으로 지금은 고인이 된 함병춘(咸秉春)씨가 주미 대사로 있던 70년대 중반의 일이다.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종신집권을 위해 선포한 소위 「유신(維新)」의 무자비한 탄압이 국내외적으로 웃음거리가 되던 시절이다. 박정권은 세계인의 조롱거리인 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포장하면서 그 불가피성을 국내외 유력인사들에게 의원배지를 미끼로 설득했다. 조용하던 미국 일본교민사회엔 「배지」 쟁탈전이 벌어졌고 실제로 누구라면 알만한 인사들이 유신을 지지한 대가로 유정회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다.■「미국에 정착한 한국인이라면 성조기를 보고 애국심을 느껴야 한다」는 함대사의 충언이 나온 시점이 바로 이 무렵이다. 본국지향적 교민들에게 가한 일침이자, 잘못된 교민정책에 대한 따끔한 지적이다. 독재자 한사람의 야욕때문에 교민들까지 왜곡되는 현상에 대해 함대사의 용기있는 지적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그 타당성에 수긍이 간다.
■최근 재외동포에 대한 특례입법논란은 과연 우리 교민정책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일부인사들의 민원성 차원의 일을 정부가 마치 전체교민의 일인양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부의 영사교민정책은 교민들이 거주국 시민이나 영주권자로서의 삶을 뿌리내리는 일을 돕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최근 신문사에는 특례입법안에 대한 찬반양론의 문건들이 쇄도한다. 주로 이민1세대들은 특례법안에 목을 맨다. 반면 1.5세대나 젊은층은 냉소적이다. 미국에 왔으면 미국사람이 돼야지 하는 자신감이다. 정부는 이런 젊은층의 현지화를 도와야 한다. 교민정책은 동포들이 현지사회의 주류(主流)로 커가는데 주안점이 두어져야 한다. 본국을 기웃거리는 「파리떼」가 교민의 주류는 아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한국판 후지모리」를 가져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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