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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폐지와 김정일 정책/李鍾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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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폐지와 김정일 정책/李鍾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특별기고)

입력
1998.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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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전문가들은 그동안 김정일의 국가주석 취임 문제를 둘러싸고 「취임」과 「주석제 폐지」라는 상반된 가능성에 주목해왔다. 이중 필자는 다음의 세가지 근거에서 「주석제 폐지」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첫째, 김정일은 대중과의 직접 접촉이나 공개적인 외교행사 등에 잘 나서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대중과의 접촉면이 넓고 공개적인 외교행사에도 빈번히 참석해야 하는 주석직을 부담스럽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김정일은 경제분야의 직접 관장에 대해 평소 『당과 군대를 비롯한 중요부문사업을 어렵게 한다』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그가 국가주석을 맡지 않게 되면, 경제난에 대해서 필요할 경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며 담당책임자에게 그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

셋째, 독재체제의 상징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어온 북한의 유일체제가 지닌 경직성을 형식적으로라도 완화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결국 북한은 이번 최고 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에서 북한관영 언론의 주석취임에 대한 예보성 캠페인마저 무색하게 만들며 이 자리를 폐지하였다. 김정일은 주석제를 폐지하면서 「국가수반」이라는 명시적 규정을 헌법에서 삭제하는 대신에, 사실상 이를 자신이 맡고 있는 국방위원장에게 귀속시켰다.

그는 개편된 권력구조에서 기존의 국가주석의 권한을 부분적으로 배분받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내각 총리에 정치적 기반이 없는 오랜 전문관료 출신인 노령의 김영남과 홍성남을 앉혔다. 「경제적 실용주의 선택」으로 해석되는 이러한 배치를 통해서 그는 형식적으로 국정의 책임을 분산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자신의 유일적 권력이 관철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으로 평가된다. 한마디로 김정일은 당과 군대를 장악하고 행정·경제분야를 전문관료들에게 맡김으로써 마오쩌둥(毛澤東) 방식의 통치를 원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석제 폐지에도 불구하고 이번 행사가 김정일이 명실상부하게 북한의 수령으로 자리잡는 모든 형식적 절차의 완료를 의미한다는 점에는 변화가 없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수령 김정일은 그의 「전사」들인 북한주민에게 권력안정의 담보물인 충성과 효성을 요구하기 위해서 그 보상으로 최소한의 물질적 삶을 보장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크게 느낄 것이다. 물론 이문제는 보다 폭넓은 정책변화를 통해서만 해결 가능하다.

그런데 김정일의 정책변화 가능성은 그의 주관적 의지문제를 넘어선 구조적 조건에 의해서 이미 주어져 있다. 흔히 말하듯이 김정일은 변화를 원하지 않을 수 있다. 「주체의 사회주의 조선」을 외치는 그에게 개방은 굴복을 의미하는 것이며 남북대화는 「조선혁명」의 포기로 받아들여질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주관적 의지를 현실에서 좌절시키는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와 자원고갈이라는 객관적인 환경이다. 독재자가 자신의 의지를 정책으로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그 실현수단(가용자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김정일에게 그 수단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그에게는 외부세력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군이라는 영향력이 남아있지만, 탈냉전의 현 상황에서 그 활용도는 제한적이며, 그것도 효과가 불확실하고 매우 위험한 가용자원이다. 따라서 생존을 위해 변화는 불가피하며 시간이 갈수록 그의 정책변화 모습은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이경우 그의 변화방향은 대외적으로 보다 폭넓은 대외개방과 적극적인 대중국, 대서방 외교추진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대남관계에서도 단기적으로는 최근의 잠수정 침투와 무장간첩 침투사건, 「인공위성 발사」주장 문제등의 해결방향에 따라 영향을 받겠지만 기본적으로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서 점진적 관계개선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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