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북 무주군의 환경운동가들이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반딧불이 몇마리를 모으면 책을 읽을 수 있는가 하는 실험이었다. 참가자들이 1ℓ짜리 투명한 페트병에 반딧불이 80마리를 모으자, 형설지공(螢雪之功)의 가능성이 증명됐다고 한다. 1쪽당 20여자가 인쇄된 천자문이 훤히 보이고, 200여자가 실린 한자책도 읽기에 무리가 없었다. 또 반딧불이를 200∼300마리 모으면 신문도 읽을 수 있었다.■독서나 면학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형설지공」은 중국 진(晉)의 선비 차윤(車胤)이 반딧불로, 손강(孫康)이 눈빛으로 글을 읽어 각자 불우한 처지를 극복했다는 고사에서 비롯됐다. 무주군의 실험이 환경보호 의식을 높이고 고사를 입증하는데만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IMF 체제에 들어서 처음 맞는 이 가을에, 반딧불과 눈빛에 의지해 책을 읽던 옛선비의 치열한 학구열과 성취욕을 상기시키기 위한 실험이었다고 믿는다.
■대형서점의 통계에 따르면 나라가 거품경제 위에 떠있었을 때는 가을 보다 여름이나 겨울에 책이 더 잘 팔렸다. 서늘할 때 노느라고 「독서의 계절」도 잊거나 외면한 것이다. 우리는 신형차, 외제차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신기루 같은 트렌디 드라마를 보았다. 「독서의 계절」은 조강지처와 같다. 이제 가난했던 시절 지게미(糟)와 쌀겨(糠)를 함께 먹던 처의 소중함을 되새겨야 한다. 도심의 아파트라도 밤중에 귀를 기울이면 여치, 귀뚜라미 같은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여전히 청량한 가을 정서를 전해준다.
■때 맞춰 「역경을 극복하라」는 메시지인 듯 출판가에는 영웅소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저자가 다른 나폴레옹 전기가 3개 출판사에서 발간되었고 칭기즈칸, 진시황, 알렉산더를 다룬 소설들이 독서시장에서 각축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칭기즈칸은 뜨거운 육성으로 말한다. 『집안을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으며, 그림자 말고는 친구가 없었다. 가난을 탓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유일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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