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正 강풍·비주류 동요 수습” 관측/“여권에 先手쳐 분열의도” 시각도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4일 『내각제개헌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함에 따라 여권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내각제 논의가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이총재가 이날 초선의원 10여명과의 조찬에서 언급한 내각제관련 내용은 『지금처럼 대통령이 표적사정 등으로 민주헌정 기조를 파괴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제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국민은 대통령을 뽑았지, 황제를 뽑은 것이 아니다. 나는 정략적 차원의 내각제 논의를 반대했지만, 이제는 그 문제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것.
이총재의 이같은 발언은 그가 그동안 대통령제 고수론자로 알려져 왔다는 점에서 향후 정국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등 여권핵심부도 『이회창 총재 체제의 출범으로 내각제 개헌은 더욱 멀어졌다』는 인식을 보여온 만큼 사태진전에 따라서는 정국운영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할 지도 모른다.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 언급에 실려있는 「현실적 무게」이다. 사실 이총재는 여론에 투영된 것과는 달리 내각제에 대한 극단적 반대론자는 아니다. 그는 평소 『대통령제든 내각제든 만고불변의 권력구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권력구조는 국민이 원한다면 바뀔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다만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합의한 내각제의 경우는 그 동기의 「불순함」때문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이총재는 또 지난해 대선 당시 내각제를 매개로 한 자민련과의 연대를 은밀히 모색한 바 있고, 이를 위해 당 정강정책중 「대통령 중심제를 유지한다」는 문구의 삭제를 검토하기도 했다. 이총재의 내각제 구상이 실행에 옮겨질 개연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날 그는 「보복사정」 등 대통령제의 폐해를 내각제 검토의 이유로 들었지만, 최근 당안팎의 상황과 관련한 「전략적 고려」를 빼놓을수 없다. 우선 소속의원에 대한 여권의 잇단 사정과 당내 비주류의 심상치 않은 동요조짐 등 내우외환(內憂外患)을 겪고 있는 이총재로서는 무언가 「국면전환」 카드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개헌논의 개방을 통해 의원들에게 「권력분점」의 기대를 심어줌으로써 추가 탈당을 막아 조기에 당을 수습하겠다는 계산을 했음직도 하다. 아울러 내각제를 둘러싸고 미묘한 갈등기류를 드러내고 있는 여권에 선수(先手)를 쳐 내부 분열을 증폭시키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총재가 이날 당무회의에서 『국민회의의 무차별한 의원 빼가기는 개헌저지선 확보가 그 목적』이라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유성식·김성호 기자>유성식·김성호>
◎한나라 비주류 반응/이한동 비교적 긍정적/反昌소장파 “당론 어긋나”/김덕룡·서청원 유보자세
한나라당의 비주류는 이회창 총재의 「내각제 재검토」발언에 대해 의외라는 표정속에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이한동(李漢東) 전 부총재측은 권력구조개편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 반면, 「반창」에 섰던 소장파 의원들은 『당론을 벗어난 발상』이라며 부정적이었다. 김덕룡(金德龍) 전 부총재와 서청원(徐淸源) 전 총장측은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전부총재의 한 측근은 『대통령 단임제에서는 권력이 한사람에게 집중, 독점과 전횡의 문제점을 낳는다는 점을 평소 지적해왔다』면서 『그러나 올연말까지는 국난극복을 위해 힘을 모으고 내년에 내각제든 대통령중임제든 국민의 뜻에 따라 권력구조개편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달리 반창진영에 몸담았던 한 초선의원은 『이총재가 여권에 몰리다보니 돌파구를 찾기위해 내각제를 거론한 것같다』며 『결국 「이회창김윤환이기택의 밀약설」이 사실로 입증된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대통령 중임제를 주장해온 김전부총재측과 서전총장측은 『이총재가 공식적으로 내각제를 밝히지 않은 만큼 논평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발언의 진의가 뭔지를 탐색하려고 바쁘게 움직였다.<권혁범 기자>권혁범>
◎청와대·국민회의 반응/“정략적 발언” 냉소적 시각/‘진심’일 가능성에도 주목
청와대와 국민회의는 4일 이회창총재의 내각제 발언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마디로 『국세청을 동원한 대선자금 모금 의혹을 희석시키기 위해 내각제카드로 여여 갈등을 유발하려는 정략적 발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양측은 그러나 이총재가 「진심」을 담았을 가능성에도 주목하면서 향후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내각제추진에 긍정적인 일부 인사들은 『경제회복후 DJP 내각제 합의를 추진하는데 걸림돌이 제거될 수도 있겠다』면서도 『진의가 불투명하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청와대 박지원(朴智元) 대변인은 일단 『지금은 경제회생에 전념할 때』라며 『개헌문제는 경제가 회복된 뒤 논의할 문제』라며 원론적으로 논평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는 『이총재가 「세풍(稅風)」 파문의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각제카드로 여여 이간질을 시도하는 것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회의도 청와대 못지않게 부정 일색이었다. 설훈(薛勳) 기조위원장은 『왠 느닷없는 얘기냐』고 반문하면서 『한나라당의 궁박한 처지를 모면해 보기 위한 정략적 발언이어서, 귀담아들을 얘기가 아닌 것 같다』고 일축했다. 한 당직자는 『내각제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진의가 전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개헌논의가 너무 빨리 진척되는 것 아니냐』며 당혹스러워했다. 그는 『대통령제를 주창해온 이총재 체제의 등장이 자민련의 내각제주장을 견제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던게 사실』이라며 이총재의 진의에 촉각을 곤두세웠다.<신효섭 기자>신효섭>
◎자민련 반응/“앞으로 대세” 고무된 표정/“국면 전환용 아니길” 기대
자민련 당직자들은 4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내각제 검토」발언 소식을 전해듣고 미소를 지었다. 당운을 걸어 추진해온 내각제 개헌 실현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판단때문이다. 물론 『진의를 더 알아봐야 한다』고 자락을 깔기는 했지만 『앞으로 내각제론이 대세가 될 것』이라며 고무된 표정이었다.
박준병(朴俊炳) 사무총장은 『이총재의 내각제 검토 의사가 사실이라면 즐거운 소식』이라며 『한나라당이 진지하게 내각제를 검토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박총장은 이어 『이총재가 당내분 방지등 다른 목적에서 내각제를 들고나왔을 가능성도 있지만 어쨌든 국민회의도 내각제 개헌 약속에서 발을 뺄 수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조영장(趙榮藏) 총재비서실장도 『이총재가 다음 대선때까지 4년간 기다릴 수 없어서 내각제론을 먼저 꺼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며 『단순한 국면전환용이 아니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당내에서 내각제 추진에 앞장서온 김용환(金龍煥) 수석부총재는 『내각제 언급에 진심이 담겨있다면 좋은 일』이라면서도 『무슨 배경에서 그같은 발언을 했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다소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반면 그는 『최근 이총재와 만난 적은 없고 총리인준 직후 한차례 전화통화를 했다』며 「사전교감」 가능성을 일축했다. 대변인실 관계자는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강조하다보니 내각제 얘기가 나온 것 같다』며 『이총재가 공동여당의 틈새를 노리면서 당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그같은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해석했다.<김광덕 기자>김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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